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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경의 Shall We Drink] <33> 재즈와 칵테일의 도시 뉴올리언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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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빛이 도는 어스름 속에 더욱 빛나는 뉴올리언스 버번 스트리트 .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Louisiana)주의 뉴올리언스(New Orleans)에 간다고 하자 주변의 반응은 세 가지로 뉘었다. 첫째, 뉴올리언스에선 재즈에 흠뻑 취해야 한다며 가볼 만 한 재즈 바를 알려주는 재즈파. 둘째 베이네(Beignets), 포보이(Poboy), 검보(Gumbo) 등 맛봐야 할 메뉴를 쉴 새 없이 늘어놓으며 다 먹고 오라고 격려해주는 미식파. 둘 다 여행 계획을 세우는데 도움이 됐지만, 가장 마음을 흔든 부류는 밑도 끝도 없는 뉴올리언스 예찬론자였다. “와우(미국인 특유의 억양으로), 뉴올리언스에 간다고? 미국에서 뉴올리언스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어. 네가 정말 좋아하게 될 거야.”

미국의 파리, 딕시랜드(Dixieland), 빅 이지(Big easy), NOLA(New Orleans, Louisiana의 줄임말) 등 뉴올리언스는 별명이 참 많다. 미시시피 강이 휘감아 도는 뉴올리언스의 지형이 초승달을 닮아 크레센트 시티(Crescent City) 라고도 불린다. 매력적인 별명만큼이나 다양한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도시다.

우선 프랑스 문화가 짙게 배 있다. 1803년 나폴레옹이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대통령에게 루이지애나를 팔기 전까지 약 121년간 프랑스령이었던 까닭이다. 그래서 뉴올리언스의 중심지는 예나 지금이나 프렌치 쿼터(French Quarter)다. 프렌치 쿼터의 거리 곳곳엔 옛 모습 그대로 프랑스풍 건물이 빼곡하다. 뉴올리언스가 미국령이 된 후엔 노예무역의 중심지가 됐다. 복잡다단한 역사 속에서 재즈가 태동했다. 재즈는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 흑인들의 애환이 담긴 음악에 클래식, 행진곡 등이 더해져 발달했다. 그러니까 재즈는 뉴올리언스에서 시작해 스윙, 모던 재즈, 프리 재즈로 발전하며 미국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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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 드 부르봉에서 만난 재즈 연주자들.

재즈와 더불어 칵테일도 등장했다. 19세기 초 앙트완 아마디 페이쇼라는 약사가 프랑스계 약국에서 달걀노른자를 섞은 혼성주를 코크티에(coquetier)란 이름으로 팔았는데, 이것이 칵테일(Cocktail)의 기원이라 전해온다. 당시 사탕수수 주요 수출지였던 뉴올리언스는 설탕이 흔했던 데다가 프랑스의 영향으로 술을 자유롭게 즐기는 정서가 남아있어 칵테일 문화가 꽃필 수 있었다. 그렇게 뉴올리언스는 재즈와 칵테일의 도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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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릿츨 재즈 클럽에선 재즈 문외한도 재즈에 몰입하게 된다.

설렘을 가득 안고 도착한 뉴올리언스의 밤. 이름만 들어도 버번위스키 향이 코끝에 감도는 듯한 ‘버번 스트리트(Bourbon Street)’로 향했다. 이게 웬걸, 거리엔 재즈는커녕 퀴퀴한 냄새와 요란한 조명과 소음이 뒤섞여 있었다. 잘못 찾아왔나 두리번두리번. 그때 어디선가 밴드가 나타났다. 거리는 무대가 되고 행인은 관객이 되어 한바탕 재즈 공연이 펼쳐졌다. 저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연주였다. 쓰러질 듯 허름한 건물 앞엔 줄이 길었다. 대체 뭐기에 하고 다가 가보니 루이 암스트롱을 비롯해 걸출한 재즈음악가들이 거쳐 간 프리저베이션 홀(Preservation Hall)이었다. 버번 스트리트 안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가야 재즈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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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 드 부르봉에서 허리케인을 주문하면 거리에서도 마실 수 있게 플라스틱 잔에 담아준다.

열린 창 너머로 흘러나오는 재즈 선율에 자석처럼 끌려간 바는 ‘메종 드 부르봉(Masion de Bourbon)’이였다. 쾌활한 종업원이 칵테일, 허리케인(Hurricane)을 자신 있게 권했다. 새즈락(Sazerac)과 더불어 뉴올리언스 양대 칵테일인 허리케인은 오렌지, 레몬 향이 나는 럼 베이스의 칵테일이었다. 칵테일을 홀짝이며 익살스러운 보컬과 진지한 연주자들의 즉흥적인 연주에 빠져들었다. 재즈의 문외한도 허리케인 같은 박수를 부르는 멋진 연주였다. 재즈는 짜릿했고, 칵테일은 상큼했다. 상큼한 맛보다 묵직하면서도 달콤 쌉싸름한 칵테일 취향이라면 새즈락이 제격이다. 버번위스키를 베이스로 해 허리케인 보다 남성적인 매력이 혀를 즐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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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가 시작하길 기다리며 마신 칵테일, 루이지애나 레이디.

좀 더 재즈에 빠져들고 싶어 찾아간 곳은 지인들이 입을 모아 추천한 프릿츨 재즈 클럽(Frizel's Jazz Club)이다. 1831년에 지은 오래된 건물 안은 소란한 거리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시간이 멈추고 오직 재즈만 흐르는 공간이랄까. 칵테일 한 잔을 손에 든 관객들은 파도를 타듯 재즈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리듬에 맞춰 발을 구르고 고개를 흔들었다. 관객보다 더 연주를 즐기는 이들은 연주자들이었다.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즐겁다는 표정으로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음을 맞췄다. 피아노, 베이스, 드럼, 트럼펫의 음이 한 데 어우러졌다. 여러 가지 술이 섞여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내는 한 잔의 칵테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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