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카푸카'…내 나이 열다섯, 아무도 필요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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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국내에 소개된 후 지금까지 1백20만부가 팔린 '상실의 시대'를 비롯해 '댄스 댄스 댄스''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등 발표하는 소설마다 인기를 끄는 하루키의 성공은 국내만의 현상이 아니다. 하루키는 30여개국에 작품이 번역된 국제적인 작가다.

96년 발표한 '태엽 감는 새' 이후 7년만에 내놓은 장편 '해변의 카프카'는 하루키가 "다른 어떤 작품보다 심혈을 기울여 완성했고 내가 지닌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작품이며, 지극히 만족스러운 작품"이라고까지 평한 작품이다. 하루키의 장담은 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들어맞고 있다.

지난해 일본에서 발간 2주 만에 60만부가 팔렸고, 중국 시장에서는 지난 5월 소개된 후 한달 동안 12만부가 팔렸다. 러시아에서도 '해변의 카프카'를 소개한 출판사가 소설의 성공에 힘입어 하루키 전집 출간을 교섭 중이라고 한다.

'해변의 카프카'는 어머니와 누나가 집을 나간 후 아버지와 함께 살던 소년이 자신의 열다섯번째 생일에 이름을 스스로 다무라 카프카로 바꾸고 가출한 뒤부터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과정을 담은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말수가 적고 친구를 포함한 외부에 폐쇄적인 한편 '까마귀'라고 부르는 자신의 분신과는 은밀하고 빈번하게 내통하는 카프카는 다른 무엇보다 독서를 좋아하고, 필요에 따라 식사량을 조절해 위를 작게 만들거나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해진 운동 습관을 지키는 소년이다. 의지에 따라 자위의 욕망을 참기도 하지만 언제까지나 자제할 수는 없다는 점을 자인한다.

사실적으로 흘러갈 수 있는 소설에 환상적인 색채를 드리우는 것은 2차 대전 말 여자 선생님이 긴급 생리대로 사용한 손수건을 주워 장본인에게 돌려 준 죄로 공개적인 체벌을 받은 뒤 정신적 충격으로 고양이와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나카타라는 노인의 존재다.

카프카가 등장하는 장과 나카타가 등장하는 장이 번갈아 반복돼, 별개의 두 소설이 제공하는 이질적인 흥미가 교차된다. 나카타가 살해한 기인 조니 워커는 카프카의 아버지였음이 드러나고, 카프카는 연상의 여인 사에키와 사별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하루키 소설의 매력을 서사를 통해 표출되는 주제의식에 한정해서는 곤란하다. 팝 음악 등 곳곳에 등장하는 서구 취향, 역시 서구의 산물이지만 고전음악에 대한 일정 수준의 식견, 삶과 사물에 대한 의미 있는 통찰, 평범하고 상식적인 화자를 등장시켜 공감을 자아내는 점 등 매력적인 요소들이 골고루 작품 속에 녹아 있어 한 쪽 한 쪽,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가는 과정 자체가 즐겁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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