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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삥땅누명 벗었다"|버스운전사의 외로운 법정투쟁 1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도둑 누명은 벗었지만 아직 할 일이 태산같아 마음이 홀가분하지만은 않습니다』
버스토큰 46개, 1백원짜리 동전 46개등 6천8백70원을「삥당」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상마운수 시내버스 운전사 최영환씨(30·경기도 부천시). 무죄가 선고되는 순간 최씨는 너무도 당연하다는듯 얼굴에 가벼운 경련을 일으켰다. 1년2개월동안「삥당꾼」으로 회사측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눈치밥을 먹던 고통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근로자편에 서서 회사측과 맞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일인가를 실감했읍니다.』
회사측으로부터「미운 털」이 박혀있던 최씨가 삥땅을 했다고 몰린 것은 지난해 5월5일.
고졸학력으로 81년4월 이 회사에 들어간 최씨는 83년7월 회사를 상대로 승무수당 청구소송을 내 근무일마다 2천원의 수당을 더받게 한것이 미움을 사게된 화근이었다.
또 83년8월 해고된 동료 운전사 방모씨(44)의 해고무효소송에 증인으로 나가 회사측에 불리한 증언을 한것도 회사의 비위에 거슬린 일이었다. 같은해 12월 회사를 상대로 휴일근무수당 청구소송을 내 재판에 계류중이기도 했다.
삥땅사건의 누명을 쓰게된 것은 85년5월5일 밤11시30분쯤「막탕」운행을 끝내고 서울 내발산동 회사차고에서 입금을 시키려고 토큰통을 들고 버스에서 내리려는데 회사 관리주임 임모씨(45)와 정비주임 김모씨가 최씨를 불러세웠다.
이들은『토큰통에서 물래 토큰을 꺼내는 것을 봤다』며 최씨를 사무실로 데리고 가더니 밤12시쯤 강서경찰서로 넘겨버렸다.
경찰관앞에서 관리주임 임씨는 토큰·동전을 한옴큼 꺼내놓으며『최씨주머니에서 나온 증거물』이라고 주장했다. 최씨는 동전한닢 없었다고 결백을 주장했으나 최형사란 경찰관은 다짜고짜『불라』며 최씨를 때리기 시작했다.
『가슴과 배를 발로 채이고 머리를 틀어쥐인채 땅바닥에 뺑뺑이를 돌리더군요.』최씨가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자 형사는 자신이 만든 조서뒤에 지장을 찍게했다.「더 맞기가 싫어」최씨는 시키는대로 했다. 그동안 정비주임 김씨가 운전석에서 찾아냈다며 토큰통의 열쇠하나를 들고왔다.
결국 조서는 최씨가 토큰통을 흔들어 꺼냈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열쇠로 열고 훔친 것으로 꾸며졌다. 형사가 부르는대로「영등포시장이서 비슷한 열쇠를 구했다」는 내용의 자술서도 첨부됐으나『절도의 증거가 확실치않다』는 이유로 구속영장도 기각됐다. 풀려난 최씨는 3일간 법원에서 치료를 받은뒤 곧 출근을 계속, 지금까지 다니고있다.
불구속사건으로 송치받은 검찰은 불기소처분(기소유예)으로 종결지으려했으나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는 최씨는 변호사를 선임해 피의자가 오히려 법원에 기소해주도록 요청했다.
기소유예되면 결국 유죄인 셈이지만 이의제기도 못하고 회사에서 쫓겨날 입장이었던것.
부인의 결혼반지를 팔고 빚을 얻어 변호사비용을 마련했다. 결국 검찰은 벌금20만원에 약식기소했고 최씨는 기다렸다는듯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재판과정에서 동료운전사 45명은『운행때마다 토큰통을 바꾸므로 시장에서 산열쇠로 열수가 없다』며 최씨에게 유리한 연판장을 재판부에 냈다.
8차례의 공판끝에 장해창판사는 11일『삥땅을 한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해 최씨의 무고함을 뒷받침한것.
『사필귀정입니다. 저를 터무니없는 도둑으로 몰아세운 사람들을 무고로 고소하겠습니다. 저는 거창한 노동운동은 잘 모르지만 근로자라도 최소한의 권리는 누려야한다는게 저의 평소 신념이지요.』
「의지의 사나이」최씨는 무죄선고는 겨우 1라운드가 끝났을 뿐이라며 의욕에 차있었다. <김용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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