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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야구 감독 30년째, 기술 아닌 기본기 가르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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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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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한 층씩 올린다는 마음으로 살았더니 어느덧 내 빌딩이 30층짜리가 됐네요.”

이성열 수원 유신고 감독
배문고 포수 출신, 부상으로 그만둬
1984년 덕수상고서 첫 지휘봉
최정·유한준·정수빈 등 스타 배출

올해로 고교야구팀 감독 생활 30년째를 맞은 이성열(61·사진) 수원 유신고 감독의 얘기다. 국내에서 고교야구 감독으로 30년 동안 활약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성적에 따라, 또는 팀 해체 등의 여파로 자리가 흔들리는 경우가 많아서다. 그는 최근 대만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다. 하지만 오심 논란 속에 아쉽게 3위에 그쳤다.

이 감독은 대구달성초와 대구경상중을 거쳐 배문고에서 포수를 맡았다. 고교 시절 은사는 ‘국민감독’으로 불리는 김인식(69) 감독이다. 이 감독은 “그분은 고교 9년 선배이자 은사님이자 멘토”라며 “김인식 감독을 만나지 못했다면 뒷골목에서 주먹질이나 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고교 졸업 후 실업팀 한전에 입단한 이 감독은 군 전역 후에는 야구를 그만두고 건설회사에 취직했다. 부상에 발목이 잡힌 때문이다. 하지만 1979년 선배의 부탁으로 서울이문초의 야구부 코치를 잠시 맡으면서 야구와의 인연이 다시 이어졌다. “야구가 그렇게 싫었는데 어느 순간 유니폼을 입고 있는 내 자신을 보면서 ‘아 이런 게 운명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82년 프로야구 출범은 이 감독의 ‘승부사 본능’을 일깨웠다. 야구 선배인 김우열·윤동균(이상 OB), 김봉연·김준환(이상 해태) 등을 보며 ‘선수가 안 된다면 지도자로 이기자’며 이를 악물었다.

그는 84년 덕수상고(현 덕수고)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덕수상고는 창단 직후라 오합지졸이었다. 85년 성적은 1무 16패. 이 감독은 “매번 지다 보니 패배가 습관이 됐다”며 “이럴 바에야 차라리 운동장에서 죽자며 선수들과 뒹굴었다”고 회고했다. 덕수상고는 86년 청룡기대회에서 창단후 첫 우승을 차지했다.

88~92년 광주진흥고 감독을 맡았던 그는 93~94년에는 대한야구협회 심판으로도 일했다. 95년 수원유신고로 옮긴 이 감독은 지금까지 이 학교에서 지휘봉을 잡고 있다. 몇 차례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지만 고사했다. “힘들 때 격려해준 학교와의 신의를 져버릴 수 없었지요.”

프로야구 kt의 조찬관 스카우트 팀장은 “이 감독은 80년대 이후 고교야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며 “팀 성적보다 선수 개인의 장래를 먼저 생각하는 ‘배려’가 이분의 최대 장점”이라고 말했다. 30년 동안 길러낸 제자만 수백 명. 최정(SK), 유한준(kt), 정수빈(두산)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프로야구 가이드북을 보니 2군을 포함해 제자 32명이 현역선수로 뛰고 있더군요.”

이 감독은 한국야구에 대한 고언도 잊지 않았다. “야구 붐 덕에 프로야구팀은 10개, 고교야구팀은 69개까지 늘었습니다. 그런데 지도자들은 기본기는 등한시한 채 기술만 가르치려 합니다. 투수는 공만 빨랐지 컨트롤이 떨어지고, 타자는 힘만 셌지 정교함이 부족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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