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상기」에만 그친 특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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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6·25 36주년을 맞아 지난주 양TV사는 연례행사처럼 다큐멘터리·드라머등 20여편에 달하는 특집프로를 제작, 방영했다. 그러나 올해 특집 역시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예년의 수준을 답습, 전체적으로 구색갖추기에 급급한 인상을 주었다.
특히 다큐멘터리들은 대개 당시의 격전지들을 순례하며 자료필름과 관계자들의 증언을 곁들이는 단조로운 형식에 의존했는가하면 몇번이나 소개됐던 당시「극장관객뉴스」를 위주로 만든 『오! 흥남』(KBS), 전중가요와 가곡으로 스타일만 약간 바꾸어 전사를 더듬어본 『망각속을 흐르는 노래』 『오! 그날』(MBC)등 급조한 듯한 프로들이 많았다.
또 이들 다큐멘터리는 모두 6·25가 「살아있는 전쟁」이라는 동일인식 위에서 출발하면서도 과거의 비극을 「상기」시키기만 했을 뿐 통일을 향한 창조적 에너지로 그 비극을 「승화」시키려는 의미상의 모색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들중 깊이 있는 통찰력과 서정성 넘치는 대본으로 꾸며진 KBS의『선우휘의 전장수첩一살아있는 전쟁』(시인 김옥영글), 『장단의 긴 여름』(시인 김광만글)은 시청자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전해준 역작이었다
드라머의 경우 자체 제작비 1억5천만원을 투입한 KBS의 대형 스펙터클『백마고지』는 전투장면을 비교적 충실히 재현한 점은 살만했으나 물량공세 위주의 국적없는 전쟁물로 일관, 인간적 메시지가 약한 아쉬움을 남겼다. 반면 MBC의 문제작 시리즈 4편은 연령별·지역별 다양한 전쟁체험을 겪은 작가들의 원작소설을 극화, 6·25의 의미를 여러 각도에서 해석할 수 있게 했고 사전제작을 통해 생생한 겨울장면들을 삽입하는 등 성의있는 제작태도가 돋보이는 수작들이었다.
다만 『승패』(선우휘원작)는 이정길의 호연에도 불구, 원작이 갖는 난해한 관념을 연극적 대사에 의존한 결말부분이 아쉬웠고 『달궁』(문순태원작)은 한의 속죄양식의 비현실성이, 『일부변경선』(김성옥원작)은 화해양식의 지나친 순수성이 각각 흠이었다. 결론적으로 올해 6?5특집극의 알찬 수확은 『시사회』(조선작원작)였는데 그것은 주인공으로 출연한 4명의 어린이들이 보여준 놀라운 연기력 때문이었다. <기형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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