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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 용기 주겠다” 브라질 무술 보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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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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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네어 심슨은 “어린이들에게도 카포에이라를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사진 김춘식 기자]

무네어 심슨(40)은 ‘다문화인’ 그 자체다. 자메이카 출신으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공부했고, 한국에서 브라질 무술 ‘카포에이라’를 가르치며 산다. 영어와 스페인어·포르투갈어, 그리고 한국어 모두 유창하다. 그는 “자기 내면의 목소리보다 남의 시선에 더 신경 쓰는 한국 사람들에게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고 싶다”고 했다. 그가 서울 북창동에 스튜디오를 얻어놓고 주 6일 카포에이라를 가르치는 이유다.

자메이카 출신 강사 무네어 심슨

그와 한국의 인연은 2004년 시작됐다. 미국의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모바일 엔지니어로 일했던 그는 한국 거래처의 오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로 6주 장기 출장을 왔다. 그는 “퇴근 후 매일 술을 마시고 술잔이 비자마자 또 술을 권하는 문화가 처음엔 무서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세 정이 들었다. “특히 한식이 너무 좋아 미국에 돌아가서도 거의 매주 한인식당을 찾았다”고 했다.

그 후 2008년 와튼스쿨 MBA 인턴십을 한국의 SK텔레콤에서 밟았고, 2009년 졸업 후에는 정식 입사했다. 그가 한국 사회에 카포에이라를 보급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사내 카포에이라 동아리를 만들어 회사 지하 2층 요가 스튜디오에서 무료로 가르쳤다 ”고 했다.

그는 2000년 컴퓨터 게임 ‘철권 3’를 하면서 카포에이라를 알게 됐다. “게임 속 ‘에디 고르도’란 캐릭터의 무술이 멋져 보였다. 캐릭터 실제 모델인 카포에이라의 고수를 찾아 미국 버클리까지 가서 배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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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포에이라는 500여 년 전 브라질 흑인 노예들의 호신 무술에서 출발했다. 마치 춤사위처럼 유려한 몸동작이 특징이다. 그가 카포에이라에 매료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그는 “카포에이라를 하기 전에 나는 내가 굉장히 똑똑하며, 힘세고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카포에이라는 너무 어려워 따라 할 수가 없었다. 교만한 내 생각이 어리석은 것이란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둘째는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일깨워 줘서다. 그렇게 어렵기만 했던 동작이 어느 날부터 잘됐다.

“카포에이라는 누구나 연습하면 할 수 있는 운동이에요. 다리가 하나인 사람도 할 수 있죠. 카포에이라를 통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힘을 알게 됐어요. ”

그는 2012년 회사를 그만둔 후에도 줄곧 한국에 머물며 카포에이라를 가르치고 있다. 카포에이라의 메시지가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다. 그는 “그동안 가르친 제자가 158명(SK 동아리 회원 포함)”이라고 꼽으며 자랑스러워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쉽지 않은 생활이다. 20여 명의 수강생들에게 받는 월 20만원 내외의 수업료로 스튜디오 임대료와 운영비 대기도 빠듯하다.

“자메이카의 부모님은 빨리 돌아오라고 성화시죠. 하지만 내 내면의 목소리는 계속 한국에 있으라고 합니다. 그 목소리를 따르는 용기를 카포에이라가 가르쳐 주네요.”

글=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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