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특수」 한국에 재연될까-엔고로 한국은 수출특수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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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동경=최철주 특파원】결국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인가 보다. 30여년전엔 일본경제가 한국의 6·25특수로 일어서더니 이젠 한국이 일본엔고 특수로 일어서게 됐다.
일본 기획청이 발표한 금년1·4분기 GNP는 전기보다 0·5%가 감소했다. 연율로 환산하면 2·1%의 마이너스성장이다.
일본의 마이너스성장은 11년전 오일쇼크에 강타 당했던 75년 1·4분기 (마이너스0·8%) 이래 처음.
세계적 불황 속에서도 독야청청 호황을 구가했던 일본에선 엔고디플레와 마이너스성장에 대한 쇼크가 대단하다.
양원 총선의 막바지에 있는 자민당 정부는 『여름을 지나면 내수가 살아나 금년성장은 당초 예상대로 4·2%가 될 것』이라고 태연한 체 하지만 내심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있다. 경제계에선 추경예산 등 본격적인 경기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도요타·닛산 등 자동차메이커를 비롯해 소니·내셔널 등 전자, 소송 등 기계메이커들이 엔고로 수출이 안되어 심한 경영위기를 겪고있다.
사람과 기구를 줄이고 월급과 보너스를 깎는 등 비상경영체제로 들어갔다. 또 엔고 때문에 외국관광객은 격감한 대신 일본인들은 한국 등으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서비스산업도 큰 타격을 받고있다.
일본의 엔고디플레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은 엔고 특수가 확산되고 있다.
금년부터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엔고 특수 때문에 가물가물하던 한국의 수출이 불꽃같이 일어나고 경기도 급커브를 그리며 올라가고 있다.
일본 자동차·전자·기계메이커들의 고전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의 자동차·전자·기계메이커들은 풀 가동하고도 물건을 대지 못해 수출주문을 사양하고 있는 정도다.
관광객이 그게 늘어 서비스산업도 한미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한국의 1·4분기 성장률은 무려 9·7%. 엔고가 시작된 작년 3·4분기의 5·3%, 4·4분기의 6·1%에서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
일본의 금년성장이 4%도 어려우리라는 전망인데 비해 한국은 10%이상으로 낙관되고 있다.
한일경제가 이토록 희비교차로 갈라진 직접적 계기는 역시 엔고.
작년 9월 선진5개국 재상회의를 계기로 1달러에 2백30엔 하던 엔화가 1백65엔까지 떨어지면서 일본엔 엔고 디플레를, 한국엔 엔고 특수를 안겨 주었다. 앞으로 일본이 엔고 쇼크에서 벗어나려면 2∼3년 걸릴 것이므로 그 동안은 한국이 엔고특수의 재미를 톡톡히 볼 것이라고 일본기업들은 부러워하고 있다.
한국의 엔고 호황은 6·25특수의 한국판이라고 비유할 수도 있다. 6·25동란으로 한국이 잿더미가 된 대신 일본경제는 완전히 일어섰듯 이번 엔고도 일본엔 불황의 찬바람이 된 대신 한국엔 경제훈풍이 되어 지속성장의 재충전찬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GNP의 마이너스성장이 기획청에서 발표된 것이 6월24일이라는 점도 우연치고는 매우 시사적이다.
6·25동란이 터지자 미국은 일본을 병참기지화하여 전쟁물자를 대량으로 사 들였다. 군용트럭·철조망·포탄·병기 등을 집중적으로 조달하고 40명의 미군들이 북적대는 바람에 물건을 미처 대지 못하고, 카바레·술집 등 서비스산업도 황금경기를 누렸다.
도요타·닛산·후지 등 자동차회사들은 한때 얼마나 떼돈을 벌었던지 10할 배당을 하고 보너스를 월급의 l백배나 주기도 했다.
소송·야하다(신 일본제철전신)등도 이때 완전히 일어섰다. 닛산·도요타·소송·신일철 등이 오늘날 엔고의 타격을 가장 심하게 받아 한국라이벌 등의 맹렬한 추격을 받고 있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6·25때 일본 서비스산업은 연간 2억 달러가 넘는 외화수입을 올렸는데 50년의 일본의 수출액이 13억 달러 정도였다.
이때 40만명의 휴가미군을 상대로 일본여성들도 맹렬히 외화수입을 올려 국제수지에 큰 기여를 했다.
6·25동란이 일어난 50년부터 특수가 기울기 시작한 55년까지 일본의 특수 계약고는 17억6백만 달러. 서비스분야까지 합치면 전성기인 3년간만도 무려 23억 달러에 이르러 일본의 무역적자를 모두 메우고도 4억 달러가 남았다. 특수에 의한 외화수입이 전체외화수입의 약40%에 이르렀다. 일본의 6·25특수는 한국의 타격 아래 미국의 대량구매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이번 한국의 엔고특수도일본의 타격 아래 미국의 대량구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엔고특수는 미국이 일본제품 대신 한국상품을 대량 구매함으로써 가속되고 있다.
관광 등 서비스분야도 마찬가지다. 6·25특수나 엔고특수나 한국·미국·일본의 삼각관계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엔고가 몇 년만 더 계속되면 한국기업들은 일본기업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동안의 어려움을 커버하고 재도약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기업으로선 엔고사태로 가슴 아프겠지만 30년전의 보은이라 생각하면 크게 자위가 될 것이다. 일본은 6·25특수를 기반으로 단단히 부를 축적, 이젠 충분히 갚을 수 있게 됐다. 일본은 만성적 무역혹자국이며 또 세계최대의 채권국이다. 2차대전후 미국 등 선진국의 은혜를 가장 톡톡히 입은 나라가 일본이며 오늘날 경제대국으로서 국제사회의 역할분담이 가장 요청되고 있는 나라가 또한 일본이다.
이번 엔고 특수가 한국을 비롯, 동남아의 어려운 나라들에 단비가 되고있다는 점은 역사의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일본이 억울해야할 이유가 「보이지 않는 손」은 결국 공평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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