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비가 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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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산성비」가 이젠 남의 나라얘기가 아니다. 한국과학기술원은 작년 8월31일부터 11월27일까지 서울 일원의 비를 분석한 결과 강한 산성을 검출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제까지 서울의 공해가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고 있다. 환경당국이 그 구체적인 오염수치를 덮어두고 있으며 이따금 잠꼬대처럼 『좋아졌다』는 말만 되풀이하고있기 때문이다.
산성비만 해도 그렇다. 작년말 서울대와 중앙대연구팀이 서울의 비가 강한 산성을 나타내고 있는 조사결과를 각각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환경당국은 즉각 이를 부인하면서 서울에서 내리는 비의 산성치는 정상적이므로 염려할 필요 없으며 학계의 조사는 측정방법이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까지 하고 나섰다.
석유나 석탄 등 화석연료를 태우면 그 속에 함유된 유황분이 아황산가스와 산화질소로 변하고 이것이 대기 중에서 비에 녹으면 산성을 나타내게 되며, 그 농도가 기준치(PH 5·0)를 넘으면 산성비라고 한다.
서울시내에서 굴러다니는 차량이 50만대를 넘어섰고 또 계속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냉·난방을 위한 연탄과 유류 소비는 겨울이나 여름을 가릴 것 없이 늘어나는 빌딩 숲에서 가스를 분출해내고 있다. 환경청이 이번 국회에 낸 자료에 따르면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대기오염이 5년 사이에 거의 2배로 악화됐고, 특히 아황산가스 오염도는 기준치(0·05PPM)의 1·6배에 달했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국산석유연료에서 유황성분이 제거됐다는 소식을 들은바 없고, 차량의 배기가스 단속이 강화된 것도 볼 수 없었다.
서울시내의 공기오염은 매일같이 체감하는 일이고, 산성비가 내린다는 조사결과도 새삼 놀랍지 않다. 그러나 막연한 느낌들이 과학적 수치로 확인된 것은 새로운 충격이다.
산성비는 눈을 자극해서 통증을 느끼게 한다. 식물을 탈색시킬 뿐 아니라 금속을 부식시키는 강력한 독성을 갖는다. 산성비는 공중의 오염물질을 지상으로 흡수시켜 흙 속의 미생물과 식물까지 영향을 주고 생태계를 파괴한다.
유럽에서는 이미 공업지대 주변의 산림이 고사하고 호수 속 어류의 변화가 관찰되고 있다. 스웨덴에 있는 10만여개의 호수 중 20%가 산성화 됐고, 이 가운데 4천개는 생물이 살지 않는 죽은 호수가 됐다고 한다.
미국의 공장굴뚝이 지금처럼 오염물질을 대기 속으로 뿜어내면 산성비가 내려 앞으로 20년 안에 플로리다주의 호수가운데 2천6백개에서 물고기가 살지 못하게될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경고도 있었다.
서독은 7·7%의 산림이 말라죽었고 34%가 고사위기에 처해 있다. 동독은 80%, 체코는 20%에 이른다. 북구도 주로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흘러온 산성비에 의해 삼림피해는 확대되고 있다. 유럽은 18세기이래 최악의 자연파괴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되고 있다.
우리는 이 지경에 이르기 전에 서둘러 대책을 세워야 한다.
환경공해를 줄이기 위해서 첫째로 전제돼야할 일은 공해대책 아닌 공해예방이다.
그쪽이 비용도 훨씬 덜 들고 인간적이다. 자동차의 배기가스도 단속을 일삼기보다는 정유와 자동차 제조과정에서 공해요소를 제거해야한다. 자동차의 경우 공해억제장치 부착을 의무화 해야한다. 궁극적으로는 그쪽의 비용이 덜 들고, 사회적 피해도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공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제고다.
눈에 얼른 띄지 않는다고 해서 공해가 방치되면 그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나 생물, 또 그 사회 자체가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붕괴되고 만다. 공해는 실로 죽음에 이르는 사회적 병인 것이다.
당국은 비를 자연의 자우로 되돌려주는 노력을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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