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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익 “다시 찾은 생명 같은 노래…모든게 감사하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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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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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익은 다음달 5~7일 열리는 공연을 기점으로 노래 인생 2막을 살겠다고 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소리꾼 장사익(67)은 22년 노래 인생 최초로 ‘소리없는 노래’를 지난 2월 불렀다. 안산시립국악단의 정기연주회 무대였다. 3000명 관중 앞에서 그는 목젖이 쏟아지듯 노래하지 못하고 소리를 속으로 삼켜야했다. 그의 성대에서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혹이 발견돼 제거 수술을 받은 직후였다.

성대 혹 수술 후 8개월 만에 복귀
구봉서 빈소에서도 ‘귀천’ 불러
내달 5~7일 세종문화회관서 소리판

“혹이 발견 되기 전에 출연 약속을 혔는디, 고민 끝에 몰매라도 맞자 싶어 갔어유. 사실대로 말하고 시 낭송하고 제 노래 반주 틀고 가만히 서 있는디 정말 힘들었어유. 살면서 그런 순간이 또 있을까. 노래 할 때가 내 인생의 꽃이고, 노래를 잃어버리면 눈물 뿐인 것을 알게 됐다니까유.”

목 상태는 주식시장처럼 오락가락한다지만 그의 충청도 사투리는 여전했다. 다행히 목도 90% 정도 회복됐다고 한다. 다음달 5~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그의 소리판이 다시 열린다. 김춘수 시인의 시 ‘서풍부’의 시구이면서 그의 노랫말이기도 한 ‘꽃인 듯 눈물인 듯’이 공연의 제목이다. 생명 같은 노래를 다시 펼칠 판을 앞두고서 그는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절실해졌어유. 더 건강하게 오래, 좋은 소리 가지고 노래하라는 의미가 아닌가 싶고…. 이번 공연을 계기로 앞으로 20주년, 장사익 후반부 공연을 펼칠 각오에유.”

그의 노래에는 시가 있다. “‘식탐’만큼이나 중요한 게 ‘시탐’”이라더니 서울 홍지동 집 곳곳에 시집이 가득하다. 심지어 화장실 창 턱에도 빼곡했다. 그는 “시를 읊조리고 낭송하고 높고 낮은 장단에 맞춰 감정 넣다 보면 노랫말이 된다”고 말했다. 시 중에서도 주로 그가 경험하고 느꼈던 이야기가 노래로 엮어진다. 신문에 나오는 시를 스크랩해 두는 것도 그의 일과다. “진짜 좋은 음식은 먹을수록 질리지 않고 진미가 나오는 거쥬. 노래도 마찬가지여. 질리기 쉬운 유행가보다 시어로 만든 노래가 위안도 되고 치유도 됩니다.”

그는 말을 하다가 노래를 불렀다. 차탁을 치는 손반주를 곁들이니 금세 흥이 돋는다. 감칠맛 나는 해설도 덤이다. “고향 역에 박목월 시인의 시 ‘나그네’가 붙어 있는 걸 봤는디 아 문득 내가 나그네 갔잖여. 아는 시지만 종이에 부랴 써서 집에서 읊어봤어유. 그랬더니 노래가 나와.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

최근 별세한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의 빈소에서도 그는 노래했다. ‘귀천’과 ‘봄날은 간다’를 불렀다. 그는 무대에서만 노래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판이 있으면 어디서든 부른다. 연극인 박정자는 "백년, 천년을 아우르는 혼을 불러들인다. 누가 뭐래도 당대 최고의 소리꾼”이라고 평가했다. 소리꾼은 자신을 ‘굿쟁이’이자 ‘광대’라고 소개한다. 그의 명함에는 ‘행복을 뿌리는 판’이라는 글귀가 직장 대신 적혀 있다. “삶의 무대가 판이쥬. 이 판이 궁극적으로 행복해야 되잖아유. 나는 어릿광대지만 행복을 뿌려주는 판을, 무대를 꿈꾸며 살고 있어유.”

그는 더 진솔하게 노래 부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나이 드는 게 즐겁다고도 했다. “돌아가신 조갑녀 선생님의 마지막 춤이 그랬어유. 휠체어에서 일어나 손짓 한번, 발짓 한번 하셨는데 모두 기립박수 치고 난리가 났었쥬. 울창한 나무의 가지를 다 치고 몸뚱이 하나를 보여주신 거에유. 노래도 마찬가지여. 인생 후반기 공연은 노래 속을 더 아는 무대를 만들고 싶어유.” 02-396-0514.

글=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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