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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 추석에 볼 만한 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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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달의 책’ 9월의 키워드는 ‘추석에 볼 만한 책’입니다. 무더위를 견디고 맞은 결실의 계절,

책 읽는 재미는 물론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게 해줄 책들을 골랐습니다. 과거와 현재 인물들의 실제 삶이 빚어낸 감동이 묵직한 여운을 남깁니다.

죽어가는 대신 치열한 삶…36세 의사의 마지막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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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흐름출판
284쪽, 1만4000원

“독자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이 책 앞에 앉아야 할 것이다.” 후기를 쓴 에이브러햄 버기즈(스탠퍼드 의과대학원 교수이자 작가)의 한마디에 이 책의 가치가 응축돼있다. 미처 끝내지 못한 남편의 원고를 마무리한 루시 칼라니티는 “나는 그의 아내이자 목격자였다”고 썼다. 죽음을 진실하게 마주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고, 결국 그 일을 해낸 남편을 ‘목격’했다고 말할 수 있는 아내는 많지 않다.

폴 칼라니티(1977~2015)는 ‘촉망받는 신경외과의사였으나 폐암으로 2년 여 투병하다 죽은 인도인 2세다’, 라고 한 줄로 요약하기에는 삶이 너무 통렬했다. 그는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매진한 한 인간이었다. 영문학·의학·철학·역사학을 공부하며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의 답을 찾으려 했다.

그는 “죽음의 두 가지 수수께끼인 경험적인 징후와 생물학적인 징후, 즉 아주 개인적이면서도 철저히 비개인적인 측면들을 파헤치기 위해 의학을 탐구했다.” 레지던트로서 꿈꿨던 이상도 “목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누구나 결국에는 죽는다), 환자나 가족이 죽음이나 질병을 잘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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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칼라니티(오른쪽)의 가족사진. 8개월 된 딸 케이디를 두고 그는 세상을 떠났다. [사진 흐름출판]

얄궂게도 칼라니티는 자신이 그토록 절실하게 원하던 일을 잘할 수 있게 된 순간에 불치의 암 진단을 받았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죽음을 “의사와 환자 모두의 입장에서 보기 시작”했다. 죽어가는 대신 계속 살아가기로 다짐한 것이다.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180쪽)

그래서 그는 산다. 수술을 하고, 책을 쓴다. 딸이 태어나고, 일상은 평온하다. 다시 문학을 읽기 시작한다. “죽음을 이해하고 나 자신을 정의하고 다시 전진하는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어휘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생존을 향한 분투에 문학은 활기를 찾아준다. 그의 최우선 과제는 맑은 정신을 최대한 오래 유지하는 것이었고, 임종까지 그 힘든 일을 해냈다. 암 진단을 받은 날로부터 죽음 직전까지, 자신의 삶을 돌아본 이 기록은 제목처럼 앞서 간 자가 뒤에 남은 자에게 들려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숨결이자 바람이다.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 폴 칼라니티는 일찌감치 “죽음이란 직접 대면해야만 알 수 있는 거라는” 확신으로 의학도가 됐고, 결국 자신의 증언으로 그 답 하나를 남겼다. 그의 선배 격인 토머스 브라운 경의 경구가 우리 모두에게 위안이 될지 모른다. “우리는 엄청난 투쟁과 고통을 딛고 이 세상에 오지만, 세상을 떠나는 일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S BOX] 작가 꿈꾸던 의사 에세이, 곳곳에 철학·문학의 향기

폴 칼라니티는 한때 작가를 꿈꿨고, 의학을 공부하기 전에 스탠퍼드 대학에서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은 문학도다. 어머니의 강요로 열 살 때 조지 오웰의 『1984』를 읽었을 만큼 조숙한 독서가로 어린 시절부터 언어에 대한 깊은 사랑과 관심을 키웠다. 그에게 책은 “잘 다듬어진 렌즈처럼 세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주는 가장 가까운 친구”로 짧은 생을 함께 했는데, 이 죽음 앞에서의 기록에도 여러 철학서와 문학서가 인용된다.

‘숨결이 바람 될 때(원제 When Breath Becomes Air)’란 책 제목은 영국 시인 그레빌 남작(1554~1628)의 시 ‘카엘리카’에서 따왔다. “죽음 속에서 삶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는 자는/ 그것이 한때 숨결이었던 바람이란 걸 알게 된다.” 칼라니티가 산부인과 실습에서 처음 죽음과 맞닥뜨렸을 때 떠오른 구절 “우리는 어느 날 태어났고, 어느 날 죽을 거요…”는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한 구절이다. 그가 자신의 죽음 앞에서 결국 다시 문학을 읽기 시작했을 때 힘을 준 한마디도 사뮈엘 베케트의 것이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소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 중에서)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소설로는 몰랐던 ‘터키인’ 파묵의 맨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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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색들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민음사
660쪽, 2만3000원

한국의 웬만한 소설독자들에게 ‘오르한 파묵’이라는 이름은 보통명사처럼 느껴진다. 20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이 후광처럼 작용했겠지만 2009년 국내 출간된 두 권짜리 장편 『내 이름은 빨강』 이후 소설은 물론 노벨상 수상연설문까지 그의 작품들이 대부분, 집중적으로 국내 번역 소개돼서다. 신간은 ‘삶과 근심’ ‘책과 독서’ 등 모두 9개 부로 나눠 파묵의 인간적인 면모부터 작가 정신, 작가 스스로의 자기 작품 설명 등 소설에서 만날 수 없었던 맨 얼굴을 엿볼 수 있는 글들을 모았다. 파묵 애호가라면 당연히, 작품을 읽은 적이 없어도 파묵이라는 현대문학의 성운(星雲)을 어림잡고 싶은 이라면 도전해 볼 만한 책이다. 진득한 독자들에겐 다행스럽게도 600쪽이 넘는 두툼한 분량이다.

파묵의 그늘, 결국은 문학으로까지 연결되는 그의 정치사회적 관심사 가 궁금하다면 권위지 ‘파리 리뷰’와의 장문의 인터뷰, 맨 뒤에 실린 노벨상 연설문 ‘아버지의 여행 가방’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의 조국 터키의 최근 불안한 정정을 떠올리면 세상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영혼이기를 갈망하는 문학인 파묵의 고뇌가 짐작된다. 동서양의 접촉면에서 좋게 보면 가교 역할, 박하게는 어느 쪽으로도 분류하기 어려운 터키의 어정쩡한 위치 역시 작가의 정체성 혼란을 가중시켰을 것 같다. 파묵은 “문학에서의 내 위치에 대해 품었던 근본적인 명제는 내가 ‘중심부에 있지 않다’라는 것”이었다고 고백한다.(643쪽) 한데 이런 주변부 의식은 터키 혹은 파묵만의 것은 아니다. 파묵은 오늘날 인류의 공통적인 두려움은 집단적으로 경험하는 모욕, 멸시받을지 모른다는 우려, 이런 불안의 반대편에서 민족적 자만심과 우월의식에 가득 차 있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진단한다. 그런 문제의식이 그로 하여금 소설을 쓰게 하는 것일 게다. 다른 색깔의 소설들 말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로마의 기쁨을 위해 또 씨받이…” 황제 가문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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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
존 윌리엄스 지음
조영악 옮김, 구픽
416쪽, 1만3800원

아우구스투스(BC 63년~AD 14년). 고대 로마의 초대 황제인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이다. 카이사르가 공화파 귀족들에게 암살당한 뒤 공개된 유언장에 따라 외종손이자 양아들인 그가 안토니우스를 물리치고 로마에 평화를 가져다준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한데 가이우스 옥타비우스라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평민의 아들이었던 그가, 고작 19살에 불과했던 청년이 어떻게 카이사르의 이름을 물려받고 스스로 가장 존엄한 자(아우구스투스)로 거듭났는지를 들여다 보면 역사가 기억하지 못하는 공간이 생겨난다. 작가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의도적으로 사실 일부를 왜곡하고 불완전한 서사를 다듬어 역사적 인물을 소환한다.

그런 아우구스투스의 비밀을 벗겨내는 방식은 매우 파격적이다. 다양한 인물들 사이에 오간 편지와 그들이 틈틈이 적은 일기가 퍼즐 조각처럼 소설 곳곳에 흩어져있다. 이를테면 “종조부 유언이 너를 어떤 세계로 불러들일지 잘 따져봐야돼. 그곳은 피아의 구분이 불가능한 곳”이라고 아들을 말리는 어미의 조언이나 “지금 그는 꼭꼭 닫힌 채 비밀 속에 숨어 지낸다. 양부를 향한 슬픔이 크기 때문일까? 그 슬픔이 굳어 야심이 된 걸까?”라는 친구의 관찰은 아우구스투스에게 희노애락의 감정을 불어넣는다.

특히 그가 끔찍히 아꼈던 딸 율리아에 대한 서술이 매력적이다. 1973년 전미도서상 수상작이라는, 시간적 거리가 무색할 정도로 글쓰기가 진취적이다. 14살에 처음 고종사촌과 결혼하고, 27살에 두 번째로 과부가 된 그녀는 아버지가 다시금 새어머니의 아들을 베필로 내밀자 “결국 로마의 기쁨을 위해 내가 또 씨받이가 되어야겠군요”라고 받아친다.

수십여 명에 달하는 등장 인물 탓에 초반 몰입이 쉽지 않다. 하지만 낯선 이름들이 눈에 익는 순간부터 빠르게 읽힌다. 마치 눈앞에서 신선들이 노닐며 고품격 막장드라마를 선보이는 느낌이랄까. 역사왜곡에 대한 걱정은 넣어두자. “역사는 결코 진실을 알지 못한다. 그럴 능력도 없다”고 예고했거니와 그 안에 깃든 메시지는 작가의 전작『스토너』보다 묵직하니 말이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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