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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법 위의 법,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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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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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석
문학평론가
단국대 교수·영문학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는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해 자녀들을 낳은 불운의 주인공이다. 그가 죽자 왕권을 놓고 그의 두 아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난다. 형제들은 1년에 한 번씩 나라를 교대로 통치하기로 했으나 형 에테오클레스가 약속을 지키지 않자 동생 폴리네이케스가 반란을 일으키고, 이들은 전투 중에 서로의 칼에 찔려 죽는다. 졸지에 왕들이 죽고 이들의 외삼촌이었던 크레온이 과도정부의 수반이 된다. 크레온은 자신의 편이었던 에테오클레스의 시신을 수습해 성대한 장례를 치르도록 한 반면 정치적 반대세력이었던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들판에 방치한다. 그리고 그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르는 자는 사형에 처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그러나 폴리네이케스의 여동생인 안티고네는 (전후 사정을 떠나) 다름 아닌 오빠의 시신을 들판에서 짐승의 먹이가 되도록 도저히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친족의 시신을 거두는 것은 그 어떤 인간의 법들보다 중요한 ‘신의 법’이라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오빠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르고, 그 대가로 크레온의 법정에 서게 된다. 법을 어긴 사유를 묻는 질문에 대해 안티고네는 “나는 서로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결국 죽음에 처해진다.

돈 모아 경비실에 에어컨 설치한 임대 아파트 주민
포장된 명분보다 환대가 숭고한 인간을 만들어

예수도 바리새인들이 목숨처럼 지키던 ‘율법들’을 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대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십계명은 병들고 고통 받는 자들을 향한 예수의 깊은 연민과 ‘사랑의 법’ 앞에서 재해석되었다. 그는 (바리새인들이 보았을 때)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안식일에 귀신 들린 자, 손 마른 자,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를 거리낌 없이 치료했고, 이런 행위들로 인해 기득권자들에게 원수가 되었다.

올여름은 사상 유례 없이 더운 여름이었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 냉장고 위에 올려놓은 유정란이 부화되고, 해수의 온도가 너무 뜨거워 해수욕장을 찾은 인파의 수가 급감한 더위였다. 이 무더위에 한 평도 채 안 되는 공간에서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일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곁에, 우리의 일상 속에 있다. 대부분이 노인들인 아파트 경비원들이 바로 그분들이다. 최근에 이런 악조건을 보다 못해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자는 운동이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한 주민의 건의로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자는 안건이 동대표회의에서 일사천리로 통과되었다. 주민들이나 동대표들이나 관리소장까지 모두가 절차보다 더 중요한 사랑의 법에 ‘감염’되었기 때문에 아주 간단하고도 쉽게 일이 해결되었다.

어떤 임대 아파트는 주민들의 모금운동으로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했고, 어떤 아파트는 경비실에 소형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해 공동전기료의 부담을 해결했다. 심지어 개인이 사비를 털어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한 사례도 있다. 반면 어느 아파트는 전기료를 이유로 아파트 정문 경비실에 유일하게 설치되어 있는 에어컨의 리모컨을 빼앗아 버렸다는 보도도 있다. 어떤 아파트에서는 이미 설치한 에어컨을 절차가 잘못되었다며 뜯어내 많은 사람의 공분(公憤)을 불러일으켰다.

왜 이런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날까. 절차 운운하지만 사실 선행을 반대하는 대부분의 명분은 돈이거나 아직도 남아 있는 봉건적 신분 의식이다. 자기 주머니에서 일 푼도 나가지 않는다면, 그리고 타자를 자신처럼 귀한 존재로 생각한다면 굳이 반대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때로 감성이 아니라 의지다. 좋아서 하는 일이면 누군들 못 하겠는가. 게다가 21세기의 현대에는 먼 고대의 안티고네처럼 사랑의 법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담보하지 않아도 된다. 뜻이 있다면 절차 안에서 혹은 절차를 뛰어넘거나 바꾸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 좋은 뜻이 길을 만들며 절차가 장애물이 아닌 열린 통로가 되기도 한다. 청년수당 문제를 비롯한 많은 논제도 마찬가지다. 포장된 명분보다 환대를 택하는 것이 숭고한 인간을 만든다. 그리하여 조건 없는 ‘환대의 법’이 의무와 명령에 토대한 다른 ‘법들’보다 중요하다(자크 데리다).

오민석 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