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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 “전기요금제는 낡은 성장엔진 시대의 대표적 유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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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사진)는 2일 한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현행 전기요금제는 가계보다 대기업을 더 중시했던 ‘낡은 엔진’ 시대에 만들어진 것”라며 “가계 소비 중심 시대에 맞게 산업용 요금은 올리고, 가정용 요금은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총재는 또, “대기업·수출·투자로 경제를 견인하던 시대는 끝났고, 이제는 가계 소비를 늘려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복지 수준을 지금보다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주요 문답.

한국경제가 구조적 위기 상황이라 분배와 성장을 동시에 해야 한다고 주장하셨다. 그 중에서도 현재로서는 분배가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설명을 부탁한다.
“이제까지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산업화 시대의 엔진이 지금은 작동을 안 한다. 그래서 이 어려움을 겪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동안의 엔진은 수요면에서 수출과 투자였다. 그동안 수요는 걱정할 필요 없었다. 그래서 생산, 공급만 늘리면 됐다. 외채 얻어서 대기업이 투자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성장을 했다. 가계는 소비를 줄이고 저축해서 대기업에 투자자금 대주라고 해왔다. 대기업은 성장의 견인기관차, 가계는 성장의 바람을 빼는 누출적 존재로 본 것이다. 그래서 가계에는 소비 줄이라고 했고, 소득은 가계보다 대기업에 몰아줬다. 그런데 그 엔진이 이제 작동 안 한다. 두 자릿수로 증가하던 수출이 마이너스가 되고 있고, 두 자릿수로 증가하던 투자가 1년에 3% 정도밖에 늘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2%대의 현재 경제성장률이 나온 것이다. 과거에는 둘 다 15~20%씩 늘어나서 7~8% 성장이 가능했다. 더 이상 투자와 수출에 맡겨서는 2%대 이상의 성장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가도 좋으냐? 안 된다. 적어도 3% 이상 성장해야 한다.

해답은 소비 뿐이다. 투자와 수출은 제조업의 국제경쟁력이 있어야 살아난다. 한국의 고비용과 중국의 저비용 때문에 국제경쟁력이 상실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는 국제경쟁력과 무관하다. 그래서 지금 경제를 끌고 갈 수 있는 건 소비뿐이다. 빈부격차를 줄이거나 법인세 올려서 가계소득 도와준다거나, 일본처럼 정부가 소비 쿠폰을 나눠준다거나 등의 방법으로 정부가 늘릴 수 있다. 소비는 가계가 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대기업 보호정책이었다면 앞으로는 가계와 대기업이 함께 쌍끌이해야 한다. 가계가 누출적 존재가 아니라 견인하는 부분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가계가 소비 늘려 경제성장 끌고 가게 하려면 가계소득을 늘려주고 복지를 확충해야 한다. 지금은 소득 수준에 비해 복지 수준이 너무 떨어져 있다. 소득은 선진국 문턱인데, 복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등 수준이다. 복지만 하자는 건 아니다. ‘선성장 후복지’ 시스템을 ‘성장·복지 병행’시스템으로 하자는 것이다. 엔진이 바뀌었는데도 낡은 엔진을 그대로 달고 가는 한국경제다. 모든 부문이 낡은 엔진으로 가고 있다. 그것 때문에 우리 경제가 어려운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전기요금이다. 한전의 생산원가는 113원인데 산업용은 평균적으로 킬로와트당 81원이다. 적자다. 반면 가정용은 평균 281원. 산업용에서 밑지고 가정용에서손실을 메워 한전이 14조원 이익을 보고 있다. 전형적인 구시대적 모델이다. 가계는 성장 누출적 존재고, 대기업은 성장 견인하는 존재라는 인식이다. 올바른 방법은 산업용과 가정용이 다 같이 원가 보상하는 선으로 가야 한다. 산업용을 올리고 가정용을 내려서 맞추는 것이 새로운 성장엔진 시대에 맞다고 본다.”

경제 기초체력, 잠재성장률 하락도 큰 문제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언급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당장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거기에 기울여야 할 만큼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한국의 경제위기는 성장률의 문제가 아니다. 잠재성장률이 2~3%까지 떨어져 있고, 앞으로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게 문제다. 경제활력이 꺼져가고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최대의 성장걸림돌이 될 것이다. 장기침체의 가장 큰 원인이 될 것이다. 내후년부터 우리 인구가 줄고 생산가능인력은 더 크게 줄어든다. 인구가 줄면 음식점, 주유소, 노래방, 골프장, 세금 모든 부문이 줄어들게 된다. 남북협력이나 해외이민 등 방법이 있겠지만 그걸 기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스스로 하기 위해서는 결혼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본인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아이를 안 가지는 것보다 가지는 것이, 한 명보다 세 명 가지는 것이 더 이익이 되도록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구체적으로는 결혼 후 출산과 육아, 교육 부담을 사회가 져야 한다. 출산과 육아 비용, 고등학교까지의 교육비는 사회가 부담해야 한다.

여성들의 직장에서의 임신 출산에 따르는 불이익이 경제면과 승진면에서 전혀 없도록 해야 한다. 현재는 불이익이 많다. 출산 휴가 중 급여가 대단히 낮다. 실제 급여의 25%, 최대 132만원 밖에 받지 못한다. 그래서 여성들이 일하러 나가는 것이다. 승진에도 지장이 많다. 주택문제도 있다. 그린벨트에 장기저리 신혼부부 전용 임대주택을 지어 저소득 신혼부부는 모두 혜택을 누리도록 해줘야 한다.”

미국 금리인상이 임박한 것 같은데 한국의 기준금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금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결정하는 만큼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박진석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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