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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합축선 "새바람"이 분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실용적인 선풍기와 에어컨에 밀러 났던 부채가 옛것을 찾는 현대인들에게 새삼 각광받고 있다. 특히 예부터 단오때면 임금이 신하들에게 나눠주었다는 단오부채의 고장 전주에서 만들어지는 합죽선은 나날이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31년째 전주 특산 합죽선을 만들고 있는 엄주원씨 (48·전주시 인후동 3가)는 연중 최고의 부채성수기인 단오명절을 앞두고 요즘 남달리 바쁜 나날을 산다. 단오에 시민축제가 벌어지는 전주에는 단오부채를 주고받는 옛 풍습이 지금껏 살아남아 그 수요를 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합죽선 한 자루를 만들려면 대를 다듬고 갓대의 변을 잡아 부챗살에 종이를 붙이는 등 1백 8가지 손질이 필요해서 다른 사람이 허드렛일을 도와주더라도 하루 온종일 매달려야 대여섯자루밖에 못 만든다』는 엄씨. 대껍질이 서로 잘붙게 하려고 번거롭지만 일부러 민어의 부레로 풀을 만들어 쓰는데도 일단 하지(양력 6월 22일께) 가 지나면 잘 붙지 않으므로 요즘이 제일 바쁘다.
따라서 하지부터 추석무렵까지는 대나무·소뼈·한지 등 필요한 재료들을 구하여 다듬는 일로 보내고 추석부터 이듬해 하지까지는 실제로 합죽선을 만든다는 것. 이런 식으로 엄씨가 일년 내 서둘러봤자 약 1천 5백자루, 많아야 2천자루쯤 만들 수 있을 뿐이다.
현재 전주시내에서 합죽선을 만드는 사람은 스무명 안팎이어서 이들이 1년동안 만드는 합죽선을 모두 합해도 3만자루를 밑돌 수밖에 없다. 그러니 연간 1만 5천자루 정도가 거래되던 합죽선의 수요가 몇 해 사이에 크게 늘었어도 물량을 댈 수가 없는 실정. 그런데도 과거에 비해 기계화된 공정이라고는 달군 인두로 지져서 대쪽에 무늬를 새기던 낙죽의 일부를 작두 비슷하게 생긴 기구로 바꿀 수 있을 뿐 완전 수제품에 가까와서 생산량을 크게 늘릴 수가 없다고 한다.
합죽선은 변죽의 마디가 많고 그 빛깔이 깨끗하며 낙죽이 고르게 된 것일수록 상품으로 꼽히는데, 품질에 따라 매겨지는 값은 대체로 1만원에서 3만원정도.
이제는 실용품을 넘어 전통문화예술품으로도 인정받아 화랑뿐 아니라 토산품점이나 전통공예품 상설전시관등에서도 합죽선을 취급하는 곳이 부쩍 늘어났다.
대껍질을 맞붙여(합죽 갓대)를 삼아 만든 합죽선은 양반이나 사대부들이 쓰던 쥘부채의 일종. 요즘은 40대를 넘긴 남자들이 합죽선의 주요 소비자이나 합죽선의 멋과 여유를 즐기는 여성도 차츰 늘고 있다는 얘기다.
선물로 쓰겠다며 그림없는 합죽선에다 사군자를 그려달라는 부탁을 종종 받는다는 화가 허람전여사(62)는 『동양화가 그려진 합죽선도 좋지만 아무 그림없는 백선을 지니고 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글귀나 그림을 받는 것도 비길데 없는 멋이 아니겠냐』고 말한다.

<전주=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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