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수입개방 압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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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가 어려운 민주화 작업을 앞에 놓고 국가적인 진통을 겪고 있는 이때 미국이 다시 경제적 압력을 강화해 오고 있다.
다음달 19∼20일에 열릴 무역실무위원회를 앞두고 미국은 우리 정부에 대해 부가가치가 높은 50개 품목의 관세를 내리고 다른 50개 품목에 대해서는 수입허가제를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그것도 연내에 끝내라는 주문이다.
그밖에 광고시장에 대한 외국인 참여허용, 금융시장 개방도 들고 나왔다.
이 같은 강대한 우방국가의 압력에 약소한 우리는 그저 난감한 느낌이 앞선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시장을 널리 개방하고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상호 보장하는 것은 자유경제의 일반원리일 뿐 아니라 우리 나라도 이를 적극 추진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문제는 미국이 국제적으로 합의된 국제무역의 일반관행, 즉 가트(GATT·관세무역일반협정)의 정신과 원칙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힘으로 밀고 나오는데 있다.
미국은 자기네 형편만 생각하고 국제원칙에 어긋나는 불공정한 기준을 만들어 우리 상품에 대해 자의적인 덤핑판정을 남발하는가 하면 우리의 경제 사정은 고려치 않고 일방적으로 시장개방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먼저 무역적자가 자신들의 국제경쟁력 약화에 있음을 시인하고 이를 만회하도록 노력해야지 그 책임이 상대방의 대미무역정책에 있는 것으로 돌려 실력을 행사하는 것은 객관적 설득력이 없다.
시장개방은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협의하고 협상할 때 비로소 양국의 이익이 함께 보장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대미무역 흑자국가라 해서 일본과 같은 수준에 올려놓고 계속 개방을 촉구하는 것은 결코 합리적인 행위가 못된다.
일본은 공업선진국으로서 매년 6백억 달러의 흑자를 올리면서도 1천3백억 달러의 세계 제일 채권국이고 방위비 부담은 GNP의 1%미만이다.
우리는 겨우 무역분야만의 수지균형에 올라 있을 뿐 전반적으로는 대외적자 상대에 있고 매년 GNP6%의 방위비를 안고 있다. 게다가 년11억 달러 이상의 미군 주둔비 마저 물고 있다. 5백억 달러 가까운 채무국인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의 방위노력은 일본의 국방을 보장하고 미국의 세계군사전략에 기여하는 범 지역적 평화노력이라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이 엄연한 현실을 무시하고 한미간의 경제협력이 고려돼서는 안 된다. 더구나 지금 우리는 연차적인 시장개방 확대계획을 수립하여 이를 대외적으로 공표·예시해 놓고 추진해 나가고 있지 않은가.
우리 정부는 또 급진파의 반미압력을 받아가면서도 미국과의 협력관계유지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압력이 계속된다면 급진파를 설득할 정부의 힘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지금 우리는 민주화를 향한 어려운 장정에 올라 있다. 평화적인 정권교체 전통의 수립과 민주질서의 회복은 우리 국민의 절실한 목표이자 미국의 소망이기도 하다.
서방 세계의 지도국가인 미국이 이 같은 사정을 외면한 채 자국의 물리적인 이익만을 위해 일방적으로 강권을 행사하려 드는 것은 결코 우방의 태도, 대국의 자세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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