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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외 개헌추진…대화정국 신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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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회 내무위 유산이후 암울해 보이던 대치정국이 신민당의 자발적 임시국회소집요구와 국회 헌 특위 구성용의 표명 등 급격한 자세전환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있다.
이번 신민당의 제의는 사실상 당론을 좌우해온 양 김씨 중 김대중씨가 흔쾌히 납득하지 않은 상대에서 이민우 총재가 주장하고 김영삼씨가 뒷받침해 나왔다는 점에서 당론 결정과정부터가 이례적이며, 정부·여당의 수용태세여하에 따라서는 획기적인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총재가 이처럼 과단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우선 최근의 정국악화에 자신이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는 점과 내무위공전, 「이시바시」문제로 인한 한일의원연맹 탈퇴 등에 대해 당 내외의 여론이 대체로 비판적이라는데 힘입은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전두환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좀더 알맹이 있게 이끌기 위해서는 정부·여당에 일방적인 양보요구만 할게 아니라 야당도 분위기조성에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정세판단이 작용한 것 또한 사실이다. 여기에 이 총재가 미국서 직접 듣고 느낀 정치적 타협의 불가피성이 결심을 재촉하는 계기가 됐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 총재는 12대 국회 들어 여야대화가 막힐 때마다 늘 써오던 『국회의원이 국회에 들어가는데 무슨 조건이 필요하냐』는 논리를 다시 한번 원용했다.
이를테면 『악화일로의 학원·노동자문제 등 산적한 현안의 해결을 위해서는 임시국회가 조속히 열려야 하며 모든 문제가 개헌 때문에 생겼으므로 국회 내 개헌특위구성도 적극 검토해야한다』는 것으로 「능동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같은 이니셔티브를 바탕으로 먼저 이민우-노태우 회담을 열어 대화의 정지작업을 한 후 전두환 대통령과의 단독회담에서 개헌시한 등 본질적 문제에 대해 가부간 단락을 짓겠다는 것이 신민당의 복안이다.
그러나 이같은 신민당의 구상이 부닥칠 장애요인도 만만치 않아 앞으로의 정국전개가 신민당의 의도대로 될지는 좀더 두고봐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정부·여당이 고위회담을 통해 신민당이 기대하고 있는△개헌시한 등 정치일정의 구체적 명시 △김대중씨 등에 대한 사면·복권 △문익환 목사 등 개헌운동과 ,관련된 구속자의 석방 등에 만족할만한 회답을 줄지 의문이다.
또 신민당이 김대중씨의 사면·복권을 헌법특위구성의 선행 조건으로 바로 연결하면 대화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동교동계가 이 문제에 얼마나 집착하며, 이 총재 등이 이런 당내 제동요인을 얼마나 과단성 있게 극복할 수 있을지가 주요 변수가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정부·여당의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이 총재의 주도는 김대중씨에 의해 항상 제동이 걸릴 소지를 안고 있다. 김대중씨는 사면·복권과 직선제에 대한「상당한」보장 없이는 어떤 종류의 대소타협도 불가능하다는 기본입장을 그대로 견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총재 임시국회소집주장을 저지하지 않는 것은 이번 방미에서 이 총재가『직선제만이 민주화』라는 김대중씨의 지론을 충실히 미국 조야에 대변한데 대한「보답」의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아울러 이 총재 구상이 쉽게 여당 측과 타협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반신반의에서 일시적으로 용인한데 불과하다는 분석도 있다.
김대중씨가 임시국회소집에 반대한다는 것은 24일 밤 C음식점에서 열린 동교동계의원(18명 참석)모임에서 분명히 드러났었다.
이 자리에서 김대중씨는 상도동계의 주도로 내무위가 공전된데 불만을 토로하고 임시국회보다는 문공 법사위를 열도록 하라는 가이드 라인을 제시했다.
동교동계의원들은 △소속의원이 10여명 이상 기소됐을 때도 국회를 열었는데 문익환목사 출석문제로 약속한 회의를 안 연 것은 잘못이며 △문 목사를 초강경으로 비호한 김영삼씨의 저의를 알고도 중구난방으로 말러든 동교동계전략에 미스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노승환부총재가 인천사대 진상조사발표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추궁을 우려해 상도동계에 적극 가세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반면 김영삼씨 측은 인천사태로 인한 신민당의 수세적 입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제를 인천사태로 국한시키기 쉬운 내무·문공·법사위 소집보다는 임시국회를 열어 국민의 관심을 헌법특위와 개헌내용에 관한 절충으로 돌려야한다는 입장이다.
김씨가 일지와의 회견에서 헌특참여를 밝히고 여 측과 개헌합의가 가능하다면 서명운동은 하되 결성대회는 필요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원내개헌추진의 적극적인 의지표명이라고 볼 수 있다.
상도동계는 인천사대에 관해서는 어느 쪽의 주장이 옳은지 불분명한 채로 여야의 주장이 현재처럼 공존토록 하는 것이 득이며 더 규명할 필요가 없다는 전략 하에 문공·법사위소집도 반대하고 있다. 상도동계가 내무위공전과정에서 과격학생들에 대한 자제촉구 발언 후 김대중씨와 다소 소원해진 문익환목사와 종교계·재야에 대한 지지표명에 더 몰두한 사실을 뒤늦게 주목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아무튼 상도동계는 상임위를 열어봐야 신민당과 학생들간에 갈등만 부각시킨다는 시각이 강하며 이 총재의 임시국회 소집론을 적극 뒷받침했다.
따라서 신민당은 재야의 「행동력」을 제휴선상에 묶어두기 위한 노력 또한 게을리 할 수 없는 형편이어서 대여대화가 이래저래 제약받을 소지를 안고있다.
재야는 신민당의 타협노선에 비판적이며 신민당의 합법적 무대제공을 최대한 활용, 독자적인 운동을 벌이자는 계산을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신민당과 재야의 양자관계는 같은 방향으로 가지만 목표지점이 다른 동반자의 관계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제반 환경적 요인을 두루 감안할 때 이민우 총재의 임시국회소집 제의가 바로 정국완화와 생산적인 대화단계로 연결될 수 있을지는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신민당도 국회라는 장에서 가능하다면 정치일정을 진행시켜 나간다는 의지를 확인한 것이며 이에 따라 정국이 당분간 완화와 대화의 국면을 보일 것이라는 점이다. <전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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