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의 풍자와 해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20일 하오1시30분,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
북과 꽹과리로 기세를 올린 학생2천여명이 단과대 깃발을 앞세우고 모여 들었다.「5욀제」 개막식에 온 대학의 신경이 쏠리고 학· 처장을 비롯, 30여명의 보직교수가심각한 표정으로 현장에 나와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경찰이 이들을 둘러쌌다.
『잘되면 직선개헌, 못돼도 이원집정』 20여명의 학생들이 앞자리에서 느닷없이 구호를 외쳤다.
2천여 학생들이 일제히 『우-』하는 야유를 보낸다. 그러나 그 소리는 곧이어 터져 나온 열렬한 박수속으로 사라진다. 「5월제」행사의 하나로 ]일 예정된 대통령모의선거에 대비한「민중기만당」기습창당대회. 즉석에서 「기만해」씨가 대통렁 후보로 뽑혔다. 「국회의원당선-유신때투옥-특사-또 투옥-특사」 라는 경력이 소개되자 광장은 웃음바다. 이를 지켜보던 교수들의 굳었던 표정이 안도의 한숨으로 바뀌었고 경찰도 긴장을 풀었다.
『영원한 찬밥신세 언제나 면해보나 죽어도 권력쟁취…』「당원」 들의 합창으로 창당 및 후보선출행사가 끝났다.
곧이어 「5월제」 개막식이 30여분간 진행됐고, 이번에는 또 다른 20여 학생이 「기호3번」을 외치며 등장.
「민족해방당」 의 「한민중」 씨로 소개된 후보가 『4시간 수업제 쟁취하여 민족대학 수립하자』 고 외치며 등장하자 또 다시 광장은 웃음의 도가니. 『와-』하는 야유섞인 환호성과 함께 『한미은행 몰수하여 민중경제 이룩하자』 『전경은 대학입소훈련에 적극 동참하자』 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이들을 난폭하게 밀치며 나타난 것은 머리에 노란 띠를 맨 「친미구국당」 당원2O여명. 후보는 기호1번「패대타」씨. 『찬전찬핵, 양키컴백』 이란 구호로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 『빰보다 자유를, 자유보다 안정을』 이란 피켓을 들고 『반미로 망한 나라 친미로 되살리자』 는 구호를 외칠 때 온 대학은 때아닌 웃음꽃으로 뒤덮였다. 웃음에 인색했던 대학생들이 마음껏 웃어보는 한 순간. 현실 사회를 보는 그들의 풍자와 해학과 유머는 그러나 그로부터 30분도 채못돼 그 자리에서 빤히 보이는 학생회관에서 분신한 한 학생의 죽음으로 다시 침울의 늪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김두자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