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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재현의 시시각각

법 앞에 왜 예외를 말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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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박재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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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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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두 사람이 있다. 상앙(商?)과 감룡(甘龍). 2300여 년 전 중국 진(秦)나라의 역사적 인물이다. 극단적 개혁과 보수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우리의 국무총리쯤에 해당되는 감룡은 상앙에게 고가의 선물을 준 것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상앙은 ‘법치를 통한 국가개조’를 주장하며 변법(變法)을 주도한 인물이다. 감룡은 당시 최강의 국가였던 위나라를 물리친 것을 축하하는 차원에서 상앙에게 구리로 만든 술잔을 선물했다. 승전 잔치를 벌이고 하례품을 전달하는 당시 풍습에 따른 것이었다. 상앙은 “이번만 눈감고 받아달라”는 측근의 조언을 물리치고 선물을 돌려줬다.

관련 자료를 토대로 두 사람 간의 대화를 가상해보자.

감룡=법으로 하례품 수수를 금지한 곳은 진나라가 유일하다. 세간의 풍습과 다른 것은 문제가 많다. 당신이 변법을 통해 무리하게 풍속을 단속하는 것을 보고도 오래 참아왔다.

상앙=하례품 금지는 법의 명령이다. 국가 기강과 백성들의 준법정신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니 어떤 명목으로도 개인끼리 하례품을 주고받아선 안 된다.

감룡=당신 같은 고집불통은 처음이다. 나는 뇌물을 준 대신으로 기록되게 됐다. 우리의 오랜 관습을 악습과 부패로 몰아가는 것은 민심은 물론 천심에도 반하는 것이다.

상앙=해치(법의 수호신)의 뿔이 왜 하나인지 아나. 법은 하나만 인정하기 때문이다.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면 법치국가는 있을 수 없다. 법이 있는데 왜 예외를 말하는가. 낭비를 막고 부패를 근절하는 것이 왜 민심에 반하는 것인가.

감룡=법을 지킨다는 것은 책망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부족의 풍습을 이끄는 건 태사의 직책에 있는 내가 할 일이다. 예의를 모르고서야 어떻게 민심을 알고 조직을 이끌겠는가. 백성들에게 익숙한 풍속과 관습을 따르는 게 세상의 순리일 것이다. 당신이 법치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사람을 처벌해 묵가(墨家)는 폭정(暴政)이라고 비판하지 않았나. 왜 굳이 남의 허물을 들춰내 벌만 주면서 살아가려는가.

상앙=변법이 성공하기 위해선 많은 고통이 따를 것이다. 우리가 강해지는 데 20년이 걸렸다. 그렇지만 변법은 계속돼야 한다. 이제부터는 법으로 아둔한 군주를 막아야 하고 성군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훌륭한 군주(진효공)를 만났기에 뜻을 펼칠 수 있었고, 군주는 법치를 만든 인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나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몇 년 뒤 진효공이 지병으로 숨을 거두면서 상앙은 형장에 섰다.

감룡=당신은 법치라는 이름으로 군주와 귀족들을 능멸했다. 할 말이 있으면 해라.

상앙=나는 오늘 죽으면 영원히 살지만, 당신은 오늘은 살았지만 영원히 죽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거열형(車裂形)으로 능지처참을 당했다.

사마천은 『사기』의 상군열전에서 상앙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예측 가능하고 공정한 법 집행을 강조했던 상앙의 법가사상은 또 다른 긍정의 측면을 갖고 있다.

부정청탁 금지법 시행이 불과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곳곳에서의 반발은 여전하다. 정부는 최근 법 시행령의 일부 규정(식비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의 상한선)을 고쳐달라는 일부 부처와 국회 상임위 요구 때문에 고심 중이다. 상한선에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를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은 상태다. 기원전 4세기 때 중국 서부지역에서 벌였던 법치와 풍습을 둘러싼 논란이 사회상규와 서민경제라는 명분으로 한국 사회에서 재연되고 있다.

음주운전으로 대형사고를 낸 전력을 갖고도 경찰청장이 되고, 90여 평의 아파트에 특혜성 전세로 수년째 살고 있으면서도 장관 후보에 오르고 있는 게 우리 법치의 현실이다. 국가의 법도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도 국기를 말해서 뭐하나. 해치의 뿔은 분명 하나뿐인데 각자의 입맛에 따라 다른 형태로 비치는 것 같다.

박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