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롯데맨' 이인원…그는 롯데 샐러리맨 신화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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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26일 숨진 이인원(69) 롯데그룹 부회장은 '롯데 샐러리맨의 신화'다. 평사원으로 입사해 오너 가문이 아니면서도 부회장 자리까지 오른 유일한 인물이었다. 신격호(95) 총괄회장과 신동빈(61) 회장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셔틀 경영'을 할 때 국내에서 그룹 전반과 핵심사업을 관장한 '롯데그룹 2인자'다.

출세도 빨랐다. 1997년 주력 계열사인 롯데쇼핑의 대표이사(부사장)로 발탁됐다. 73년 롯데호텔 총무부로 입사한 그가 86년 롯데호텔 관리 담당 이사로 승진, 이듬해 롯데쇼핑 관리 담당 이사로 자리를 옮긴지 10년 만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평균 연령 60대인 롯데 계열사 대표들 사이에서 젊은 '50세 대표'는 파격적이었다"고 말했다. 5개월 후엔 사장으로 승진했다.

'관리 전문가'였지만 백화점 경영은 공격적이었다. 고인은 10년 동안 롯데백화점을 이끌면서 업계 1위로 확고하게 자리 매김했다. 2800억원을 들여 서울 소공동 1번지 롯데 본점과 영플라자, 에비뉴엘(명품관) 등 연면적 약 36만4000㎡(11만 평)의 거대한 '롯데타운'을 일군 것이 그다. 우리홈쇼핑 등 롯데쇼핑의 주요 인수·합병(M&A)도 주도했다. 2006년 롯데쇼핑 상장의 '1등 공신'으로도 꼽힌다.

반면 성격은 조용하고 차분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술·담배·골프를 모두 안했고, 특별히 가까운 사람도 없었다. 사생활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했다. 백화점 관계자는 "43년 롯데맨이라는 자부심이 강하셨다. 백화점 사장 때도 협력업체를 안 만날 정도로 청렴과 자기관리를 강조하셨는데 상심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꼼꼼한 성격에 치밀하고 현장을 중시하는 점이 '리틀 신격호'라는 별명이 붙을만큼 신 총괄회장과 꼭 닮았다는 평가도 많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본점 지하에 물이 들어찬 적이 있었는데, 신 총괄회장이 감전 위험이 있는데도 매장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고인이 이를 만류하고 대신 들어갔을 정도"라고 했다. 또다른 백화점 관계자는 "2001년 잠실점이 재개장 한지 일주일 뒤 홀로 매장에 와서 마네킹 밑의 먼지나 계산대 밑 서랍 정돈 상태까지 다 점검하고 갔었다"고 말했다.

사장이 된 뒤에도 동대문 패션 타운 등 유통 현장을 일주일에 한두 번은 직접 다니면서 벤치마킹을 했다. 백화점 매장 기둥에 붙은 거울을 보면서 립스틱을 바르던 고객을 보고 여성용 휴게실을 만들라고 직접 지시하는 식으로 현장 점검을 바로 경영에 반영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자료를 보지 않고도 계열사 매출 수치를 다 욀 정도로 꼼꼼한 점도 신 총괄회장과 비슷하다"고 했다.

신동빈 회장과는 2005년 유니클로와 합자회사 출범 간담회 때 '대변인' 역할을 하고, 2006년 상장 설명 미국 간담회에 동행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2007년 신 회장이 정책본부 본부장으로 있을 당시 고인이 부본부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보좌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 때 신 회장을 지지했다.

롯데그룹은 이날 "평생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롯데의 기틀을 마련한 이인원 부회장이 고인이 됐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운 심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집무실로 정상출근한 신동빈 회장에게 직접 고인의 소식을 알린 임원은 "신 회장께서 말씀을 잇지 못하셨다"고 전했다. SDJ코퍼레이션 관계자는 "신격호 회장도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구희령·최현주 기자 hea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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