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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기업주들 지금은 무얼하나-재산추적조사계기로 근황을 알아보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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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대한중기와 풍만제지를 시작으로 부실기업 정리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기업을 부실하게 만든 업주장본인들의 숨겨놓은 재산을 추적 조사키로 했다.
그러나 정작 부실정리의 뒤안길에서 잊혀져가고 있는 것은 부실기업의 전 오너들이다.
이들은 과연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을까. 근황을 추적해본다.
부실의 규모는 70년대보다 더욱 커졌지만 적어도 80년대의 부실정리 상황이 「기업은 망해도 기업인은 산다」던 70년대와는 다르다는 것을 이들 부실기업 전 사주들의 근황을 보면 알 수 있다.
개중에는 해외로 도피한 전구극 섬유대표 정극목씨, 일찌감치 「신병치료차」미국에 건너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고있는 조봉구 전 삼호 회장 등과 같은 경우도 끼어있으나 80년대 들어 사회에 부실의 파문을 일으켰던 대부분의 기업인들은 「출국정지」에 묶인 채 세상에 노출되기를 꺼리며 그럭저럭 지내고 있는 형편이다.
대구 광명건설 대표였던 이수왕씨, 영동개발진흥 사주 이복례씨, 전 명성그룹회장 김철호씨, 오대양건설 대표였던 강정룡씨, 한일상공대표였던 정철신씨 등은 이미 확정된 형을 살고있거나 구치소에 수감된 채 재판을 진행 중에 있고 전 경남기업사장 신기수씨, 변강우 전 공영토건사장 등은 기업정리 이후의 행적이 재계는 물론 측근에게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양정모 전 국제그룹회장, 주창균 전 일신제강 회장 등은 비교적 간간이 근황이 알려지고 있긴 하나 사람을 피하고 입을 열려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흑자도산」격의 여의도백화점 대표였던 김희수씨 만은 자주 얼굴을 나타내며 새로운 사업을 모색하고 있는 유일한 케이스다.
이들은 거의가 이제 공식직함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으며 전세를 살거나 비록 자기소유의 집이라도 가압류·혹은 은행이 담보권을 설정한 집에서 살고있다.
주창균 전 일신제강 회장은 지금도 종친회회장·아시아럭비연맹 종신이사·대한럭비협회 명예회장 등의 직함을 갖고있으나 이는 그가 비록 부도는 냈지만 「부실기업」인과는 거리가 먼 기업인이기 때문이다. 그 외의 기업인들은 일체의 공식 직함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주창균씨도 당시 2억원짜리 후암동 집을 8천만원에 넘기고 한동안 전세를 살다 지금은 방배동 아들집에서 살고 있다. 신기수씨는 후암동 저택이 일찌감치 넘어갔으며 조봉구씨의 방배동 1천8백여평 대저택은 당시 주거래은행인 조흥은행이 조씨가 경영하던 삼호에 넘겨 집을 허물고 고급 빌라 18동을 지어 분양(분양가 약20억원), 은행 빚을 갚는데 썼으므로 지금은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
이밖에 양정모씨·조용시씨(전 삼호사장)·배영준씨(전 남광토건사장) 등은 아직 자신소유의 집에서 살고 있으나 모두 가압류되어 있거나 아니면 담보권이 설정된 탓으로 마음대로 팔아 처분할 수는 없는 집들이다.
은행측에 의해 아직 처분되지 않고 있는 것은 청산절차가 아직도 완전히 끝나지 않은데다 재계의 눈이나 세정상 당장 전세집이나 거리로 나앉게 할 수는 없기 때문.
살고있는 집만큼은 주식이나 다른 부동산과는 달리 웬만하면 가장 나중에 처분하게 마련이며 또 인수하는 측의 배려 여부에 따라서는 건질 수도 있는 것이다.
한편 아직도 은행측과 재산처분관계로 소송을 벌이고 있는 것은 김철호씨가 유일한 케이스. 소송의 대상은 김씨 개인소유의 양평땅인데 김씨는 현재 옥중에 있으므로 부인 신명진씨가 변호사를 대 소송관계를 도맡아 하고있다.
신기수씨와 주창균씨·이수왕씨 등은 요즘 독서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
주창균씨는 동양 종교관계서적을 많이 읽고 있고, 이수왕씨는 대구교도소에 복역중이면서도 경제전문잡지를 정기 구독해 읽을 만큼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신기수씨는 지나칠 정도로 「은둔」생활을 하고 있으며 지난날의 측근에게조차 거처를 알리지 않은채 오직 측근 한사람에게만 자신의 연락처를 알려주고 있다.
신씨는 지금도 자주 거처와 전화번호를 바꾸고있다.
법률상 여전히 「독신」인 신씨는 거의 하루종일 책이나 읽으며 소일하고 있다고 한다.
신씨와 같은 극단적인 경우 외에도 세상의 이목을 될수록 피하기는 다 마찬가지여서 지금도 국제그룹회장시절과 마찬가지로 매주 목요일이면 부산에 내려갔다가 월요일에 다시 서울로 돌아오곤 하는 양정모씨는 비행기를 탈 때 항상 제일 나중에 타고 제일 먼저 내리는 습관이 붙었다. 또 1등석을 피해 항상 3등석을 타는 것도 예전과는 다르다.
미국 LA에 살고있는 조봉구씨는 가끔 현지 교포신문에 「부동산업을 한다」「중국음식점을 열었다」정도의 동정이 실리곤 하는데 조씨일가는 현재 모두 미국에 살고 있고 다만 2세 조용시씨만이 가족과 떨어져 모든 일에서 손을 뗀 채 서울 방배동자택에 살고있다.
심심찮게 『누구누구가 출옥해 모처에 나타났더라』는 소문도 돌았지만 형이 확정돼 실형을 살고있는 부실기업주들은 지금도 교도소 생활을 하고있다.
김철호씨는 안양교도소에서(징역 15년), 이복례씨는 의정부교도소에서(징역 15년), 이수왕씨는 대구교도소에서(징역 10년) 각각 복역중이며 이밖에 이철희씨는 안양교도소에(징역 15년), 장령자씨는 수원교도소에(징역 15년)각각 있다.
다만 복역도중 이복례씨는 당뇨병 등이 악화돼 약 3개월간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가 다시 교도소로 돌아갔으며 장령자씨도 한때 맹장수술을 받기 위해 잠시 교도소를 떠난 적이 있다.
대한중기 김연규씨와 풍만제지 김명석씨의 「생계대책」은 아직 미정인 상태.
김연규씨는 지난해 기아산업과 인수인도계약을 하면서 생계대책비조로 얼마를 받기로 합의서를 받아놨으나 이제 「칼자루」는 은행과 기아산업이 쥐고있으므로 「처분」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김씨의 북아현동 집도 이미 가압류가 들어가 있는데 기아측은 모종의 「생계대책」을 마련하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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