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카를로스 고리토의 비정상의 눈

‘폭염’이라는 한국말을 이해하게 된 이번 여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기사 이미지

카를로스 고리토
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

대부분의 사람은 브라질 하면 작열하는 태양과 구릿빛 피부를 떠올리며 ‘늘 더운 나라’라고 생각하기 일쑤다. 몇 주 전 강원도 홍보대사로서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평창 올림픽을 알리러 브라질에 다녀오자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건넸다. “브라질 엄청나게 덥지?” “더운 데서 고생했겠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한국이 훨씬 더워!”

리우 올림픽이 열렸던 8월은 브라질에선 겨울이다. 물론 겨울이라 해도 리우는 섭씨 18~23도를 유지한다. 한국으로 치면 이른 봄이나 가을 날씨다. 상파울루는 더 낮아 9~13도 정도로 내려가는 일도 잦다. 이 정도면 브라질 사람은 춥다며 집 밖으로 나가기를 꺼린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지만 일부 지역에선 몇 십 년에 한 번쯤 눈이 내리기도 한다.

이런 브라질의 겨울을 즐기다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면서 비로소 ‘폭염’ ‘숨이 턱턱 막힌다’ ‘땀이 비 오듯 흐른다’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됐다. 주차해 둔 차는 거의 찜질방 불가마 수준으로 뜨거웠다. 휴대전화에선 ‘폭염경보’가 울렸다. 더 문제는 집이었다. 그나마 차에는 에어컨이 있지만 집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며칠간 사람들이 ‘침대에서 수영했느냐’고 물어볼 정도로 땀을 뻘뻘 흘리며 버티다 결국 미니 에어컨을 사고야 말았다.

기사 이미지

높은 습도는 고온보다 견디기가 더 힘들다. 과거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기숙사에 에어컨이 없었는데 가방 안에 보관했던 옷들에 전부 곰팡이가 핀 적도 있었다. 브라질의 여름은 덥지만 습하지는 않다. 보통 창문을 열고 자거나 선풍기만 틀어도 버틸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에어컨 바람을 많이 쐬면 목과 몸이 아파 에어컨 트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이젠 에어컨 없인 도저히 못살겠다고 했을 정도로 한국의 올여름은 정말 지독하다.

한국의 매력 중 하나가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다. 계절에 따라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고 추억을 만들며 제철 과일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불편한 점도 꽤 있다. 철마다 옷도 따로 필요하고 이를 보관하려면 옷장도 커야 한다. 특히 두꺼운 겨울 이불은 처치 곤란이다. 여름에는 냉방비, 겨울에는 난방비 때문에 걱정이다.

이번 한국의 여름은 정말 브라질이 그리워질 정도로 힘들었다. 누구보다 추위를 싫어하는 내가 빨리 겨울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릴 정도니까 말이다. 물론 겨울이 되면 이 열기를 그리워하겠지만.

카를로스 고리토 [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