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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티켓 팔다 망한 회사, 구두 팔아 회생 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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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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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콰이아 연매출이 1993년에 7000억원이었습니다. 요즘 가치로 3조원입니다. 박정희~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의 구두’였지요. 그런데 왜 망했을까요.”

형지에스콰이아 강수호 대표
상품권 부메랑 맞은 에스콰이아
형지서 인수한 뒤 흑자 달성 눈앞
착한 가격 내세운 핸드백도 선보여

강수호(51·사진) 형지에스콰이아 대표는 거침 없었다. 23일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겸 팝 아티스트 장 샤를 드 카스텔바작(67)과 손잡고 첫 핸드백을 내놓는 자리였지만 반성회 같았다. 그는 “어떻게 하면 에스콰이아가 옛날의 영광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몇번이고 말했다.

1961년 설립된 토종 제화업체 에스콰이아는 81년 제화업체 최초로 1000만 달러 수출을 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영에이지·미스미스터 등 만드는 브랜드마다 잘됐다. 하지만 경영난에 시달리다가 2009년 사모펀드에 인수됐다. 2011년에는 ‘EFC’로 이름까지 바꿨다. 지난해 6월 패션그룹형지가 인수하면서 ‘형지에스콰이아’가 됐다. 강 대표는 형지의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이다. 그는 인수 전 4개월 동안 에스콰이아의 몰락 원인을 철저히 분석했다.

“소비자가 뭘 원하는지 제대로 못 봤어요. 직접 고객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것보다 구두 상품권을 많이 발행해 미리 확보하는 매출에 집중하다보니 수익성이 악화됐죠. 해외 브랜드가 들어오고 탠디나 소다 같은 신흥 강자들이 등장했는데 대응도 못했고요. 소르젠떼 같은 의류 사업까지 무리하게 넓히다 보니 결국 위기가 찾아온 거지요.”

에스콰이아 인수 첫 날, 강 대표는 기존 직원들과 1박2일 ‘비긴 어게인(재출발)’ 캠프를 떠났다. 그는 “구조조정을 안하고 180명 직원을 모두 고용 승계했다”며 “기존 직원들만큼 회사의 문제점을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다들 컴퓨터는 고쳐 쓰면서 사람은 잘 고쳐 쓰려고 안한다”고 했다. 캠프에서 토론하며 나온 문제점을 분석해서 새로 날아오르자는 ‘창공 비행팀’을 만들었다.

강 대표는 “비행기가 이륙할 때처럼 초반에 힘을 확 내야 날아오를 수 있다”며 “연간 100억원씩 적자 나던 회사를 올해 안에 흑자를 낸다고 하니까 다들 미쳤다고 했지만 현재 35억원으로 적자를 줄였고, 연말이면 1억원 정도 흑자가 날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말 184개였던 매장은 247개로 34% 늘었다. 구겨 신은 구두 뒤축이 자동으로 복원되는 등의 독자 기술을 갖춘 중소기업과 손잡고 신제품을 개발하고, “지금은 회사가 어렵지만 앞으로 물량이 5배는 늘어날 것”이라고 협력 업체를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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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조사도 많이 했다. 그렇게 해서 내놓은 것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좋은 착한 백’을 표방하는 ‘장 샤를 드 까스텔바쟉’이다. 카스텔바작은 ‘디자이너표 첫 교황 예복’과 가수 레이디 가가가 입어서 유명해진 ‘개구리 인형 코트’등으로 유명한 프랑스 디자이너다. 올 3월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주변을 네온으로 감싸 빛에 싸여 떠오르는 것처럼 보이게 ‘공중 부양’ 퍼포먼스를 한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24일 1호점을 연다. 핸드백 가격은 10만~50만원대다. 백화점 브랜드 핸드백은 대개 30만~100만원 선이다. ‘가성비 핸드백’을 만들기 위해 제조 방식도 바꿨다. 프라다·투미·코치 등에 가죽을 공급하는 해성아이다, 그리고 버버리·DKNY 등의 핸드백을 제작하는 JS코퍼레이션 등 해외 유명 브랜드에만 납품하던 업체를 설득해 손잡고, 직거래를 통해 원가를 낮췄다.

매장 디자인은 제일기획이 맡아 매장 직원을 도슨트(작품 해설사)라고 부르는 등 ‘카스텔바작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라는 콘셉트로 만들었다. ‘매장 자체가 고객 쉼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논리로 백화점을 설득해 수수료도 기존 브랜드보다 낮췄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가죽 원가만 따져도 그 가격으로는 수익성은 물론이고 품질도 담보하기 어렵다”며 우려했다.

강 대표 역시 “사실 지금은 적자를 겨우 면하는 수준”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품질 좋은 제품을 괜찮은 가격에 사고 싶어하는 소비자의 마음에 들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며 “제품이 많이 팔려서 대량 생산을 하게 되면 나중에 이익을 낼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중국 시장도 겨냥하고 있다. 형지는 카스텔바작의 아시아(일본 제외) 상표권을 갖고 있다.

구희령 기자 hea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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