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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춘추|손기상<본사 논설위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한국 월드컵 축구팀이 멕시코 고원을 정복하러 출국한 바로 다음날, 김종부 선수가 교생 실습 차 모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에 둘러싸여 축구 실기를 하는 모습이 신문에 보도되었다.
32년만에 월드컵 출전이라는 경사 속에 묻힌 한 젊은 축구 스타의 좌절은 그 원인이야 어떻든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상업주의에 의한 스포츠의 오염은 이제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고, 기업과 스포츠의 결탁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어 「스포츠 상업주의」 는 마부 없는 마차처럼 끝도 밑도 없이 질주하고 있다고 우려하는 사람이 많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남작은 그의 『올림픽 회고록』에서 올림픽 정신과 이상을 가리켜 『인내력과 체력뿐 아니라 고상함과 도덕적 순수성의 기풍, 정직함과 스포츠맨다운 희생 정신을 고양한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그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의 전통은 이제 완전히 퇴색해 버린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소비문화의 시녀로 전락한 스포츠는 커다란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에게 「건강과 공정의 이상」을 심어주는 스포츠가 이처럼 변질하게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세계 스포츠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IOC (국제올림픽위원회)임에 틀림없다. 정치적 중립을 지킴으로써 권력항쟁으로부터 초연하고, 아마추어리즘을 고수함으로써 경제적 이해로부터 자유스러운 올림픽은 그래서 그 신성성을 지켜왔고 또 절대권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국제정세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와 올림픽의 이상을 더 지탱하기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미국은 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코트했고 그 보복으로 소련은 또 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불참하기에 이르렀다. 올림픽의 정치적 중립을 근본부터 흔들어 놓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포츠 전문가들은 「보다-빨리 보다-높게 보다-힘차게」(citius-altius-fortius)를 내세우는 올림픽의 모토가 선수의 「우수성」 에 역점을 둔 것이며, 그렇다면 최고 수준의 프로 선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상업주의가 고개를 들이밀 여지가 생긴 것이다.
이 상업주의가 올림픽에 본격적으로 침투한 것은 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다. 막대한 경비의 부담 때문에 시민과 시의회의 지지를 얻을 수 없었던 조직위원회는 올림픽을「상품」으로 기업에 판매함으로써 지금까지의 적자대회를 2억1천5백만달러의 흑자대회로 전환시켰다.
그래서 「이상」을 판 것이 아니라「젊은 육체」를 팔았다는 비판의 소리도 있었다.
LA 올림픽의 이 「상혼」은 대학생들의 올림픽으로 신선한 매력을 풍기던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그대로 오염되었다. 85년 일본 고오베대회는 「기업협찬대회」로 변질되어 1백억엔이 넘는 개최경비의 거의 절반을 스포츠 용품·복사기·홍차등의 상품광고로 메울 수 있었다.
이러한 상업주의가 가장 극성을 떠는 곳이 바로 마라톤이다. 작년에 겨우 16회를 맞은 뉴욕시 마라톤대회는 유명 선수들이 얼굴만 내놓아도 「출연료」를 지불했고 또 다른 대회보다 엄청난 「뒷돈」을 줌으로써 세계 강호들을 뉴욕에 집결시켰다.
이 뉴욕대회는 상금총액이 27만달러로 우승자는 2만5천달러의 상금과 4만달러 상당의 고급 승용차가 주어졌다.
이 같은 신설대회의 고액 상금 때문에 이제까지 권위와 영광의 상징처럼 되어왔던 87년 역사의 보스턴대회는 신인들의 등용문정도로 전락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작년 7월 런던에서 열린 국제육상경기대회의 3천m 경기에서 LA 올림픽의 맞수였던 미녀선수「메리·데커-슬래니」와 맨발의 소녀「졸라·버드」의 두번째 대결은 그대표적인 예. 이 경기를 실현시키기 위해 미국의 한 TV사는 「버드」에게 은밀히 9만파운드를 지불한 반면 레이스에 우승한 「슬래니」는 상금 1만8천파운드를 포함해서 5만4천파운드를 받았을 뿐이다. 대부분의 스포츠는 이처럼 「기록의 레이스」가 아니라 「상금의 레이스」로 타락했다.
이 같은 상업주의의 팽배는 일류선수들을 하나의 「상품가치」로 간주하게 되었다. 그 유혹에 빠진 선수들에 있어서는 아마추어리즘은 단지 올림픽에 참가하는 자격 정도로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스포츠의 본질은 인간의 지적·도덕적·신체적 능력을 조화있게 발달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 스포츠는 막강한 상업주의의 유혹을 벗어나 새롭게 탄생하지 않으면 안될 중대한 전환점에 서있다.
특히 앞으로 커다란 국제행사를 앞둔 우리의 스포츠 행정당국과 기업들에겐 김종부선수 사건이 던진 파문은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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