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의 작가전] 하드고어한 오후 한 시 #3. 조개가 된 남자 (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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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똑바로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집에 온도계가 없어서 그렇지 가히 36도를 넘어설만한 폭염이었다. 남자는 방바닥을 엉금엉금 기다시피 했다. 회식이 사흘 전의 일이니만큼 조개의 조그만 살점이라도 몸속에 남아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악취는 남자의 위장에서 부단히 올라왔고 심지어 공기에서도 맡아졌다. 남자는 주머니를 뒤졌다. 껌의 딱딱한 감촉이 손에 닿았다.

그날 남자는 ‘댕겅’ 소리와 함께 잘렸다. 즉결심판이었다. 오너에게 그런 원색적인 욕설을 퍼붓고 살아남기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터덜터덜 회사를 걸어 나오는데 누군가 껌을 내밀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껌 할머니였다. 껌 할머니가 그를 향해 웃고 있었다. 자애롭고 따뜻한 미소였다. 그런 미소는 아무나 짓는 게 아니었다. 어머니만이 지을 수 있는 그런 미소였다.

할머니가 껌 한 통을 남긴 채 골목 안으로 사라지자 남자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껌 할머니가 누군지 알았어. 딸기 냄새. 아, 바로 어머니였어! 나는 그토록 그리운 얼굴을 왜 기억해내지 못한 걸까. 홀몸으로 온갖 일을 전전하며 자식 뒷바라지를 하던 어머니, 삶에 지치고 남자들의 구애에 지친 나머지 재가를 결정한 어머니.

남자는 골목으로 부리나케 달려 들어갔다. 온 동네를 샅샅이 뒤졌지만,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는 없었다. 스무 해도 더 지난 이 시점에서 왜 내 앞에 나타난 것일까. 그것도 껌 통을 들고서. 오랫동안 자식의 성장을 주시해오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더위에 지치고 직장마저 잃은 그에게 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는 없다는 듯 껌을 내민 어머니. 여전히 한 통에 천 원이었고 국적불명의 딸기 맛 껌이었지만 말이다.

남자는 껌을 통째로 까서 입안에 넣었다. 껌을 우적거리며 네 활개를 펴고 누웠다. 선풍기가 윙윙 돌아가고 있었다. 차라리 잘된 일이다. 월급이라고 해봤자 입에 풀칠할 정도인 데다 꾹 참고 붙어 있어 봤자 김 부장의 전철을 밟을 게 분명했다. 휴식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얼마나 좋아? 선풍기도 맘껏 쐴 수 있고. 맘껏 쐬는 정도가 아니라 선풍기 바람을 하도 먹어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미적지근한 바람이 폐를 공격하면서 오히려 산소의 유입을 차단했다. 가슴이 답답한 것이 꼭 질식해 죽을 것 같았다. 남자는 엉금엉금 기어가 선풍기를 껐다. 그냥 덥다고 말하는 건 너무 인간적이었다. 집 전체가 푹푹 삶아지는 느낌. 입속의 껌도 거의 액체가 되어 있었다.

남자는 컵에 껌을 뱉어 냉장실 깊숙이 넣어두었다. 굳혀서 다시 씹을 생각이었다.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였다. 남자는 방바닥에서 올라오는 미세한 진동을 느꼈다. 진동은 점점 증폭되었고 남자의 몸을 흔들었다. 익숙한 진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잠시 후 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방구석에 있던 냉장고 문짝이 활짝 젖혀져 있고 껌이 뭉게뭉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남자의 몸은 껌에 실려 어디론가 흘러갔다. 고시원 관리인이 빨래를 걷다가 남자를 보고 뒤로 자빠졌다. 지붕이 따개비처럼 따닥따닥 이어진 고시촌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지나가던 자전거가 껌을 피하다가 옆으로 쓰러졌다. 남자는 그 모습을 보고 히히 웃었다. 껌덩이는 남자를 태우고 점점 앞으로 나아갔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 돌발적인 상황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껌덩이가 푹신한 쿠션 같았다. 몇 개의 모퉁이를 지나자 낯익은 건물이 나타났다. 남자가 다니던 회사였다. 회사를 보자 가슴이 뛰었다. 3층 어디쯤에 자신이 다니던 사무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낡디 낡은 5층 건물이 더 이상 영세업자들로 우글우글한, 인력 착취의 본거지로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잔소리를 퍼붓고 매일 술을 퍼마셨지만 부모 대신 남자를 키워준 작은 어머니, 작은 아버지 같은 느낌. 한없이 다정하고 너그럽게 느껴지는 무엇이었다. 혹시 내가 회사에 다니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남자는 자신의 마음이 낯설었다.

껌덩이는 남자를 회사 계단까지 밀어붙였다. 그러니까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사무실 입구에 다다랐을 때였다. 사무실의 출입문이 부푸는 게 보였다. 곧 터질 것처럼 문짝은 한껏 발기해 있었다. 사무실 안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었다. 반사적으로 남자는 두 손으로 문을 막았다. 있는 힘껏 문을 밀어붙였지만 곧 우지끈,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계단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문짝이 부서져 있고 그 너른 구멍으로 또 다른 껌덩이가 뭉게뭉게 밀려나오고 있었다. 사무실 냉장고가 포승줄을 끊고 껌을 게워낸 것이 틀림없었다. 밀려나오는 껌 속에 김 부장이 박혀 있는 게 보였다. 다행이라면 김 부장이 죽지 않고 살아 여전히 기안서를 작성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껌덩이에 파묻힌 상태에서 그가 그런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남자는 헤엄치듯 껌을 비집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사장의 책상 서랍은 잠겨 있지 않았다. 남자는 리모컨을 찾아 힘껏 버튼을 눌렀다.

사태가 진정된 후에도 남자는 사무실을 떠나지 못했다. 발밑에 껌이라도 붙어 있는 것 같았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은 마음뿐이었다. 다시 한 번 남자는 자신이 회사를 다니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상 위는 여전했다. 몇 개의 서류철, 누런 파일, 자기 계발서 한 권, 포스트 잇, 서류 집게들 그리고 볼펜 두 자루가 산가지처럼 꽂혀 있는 원형 필통. 출근 때마다 자신을 맞아주던 익숙한 풍경이었다. 남자는 홀린 사람처럼 자리에 가서 앉았다. 익숙한 신에 발을 담근 듯 몸이 편안했다. 이렇게 앉아 다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원히 이 자리에 남고 싶었다. 더위도 악취도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뜨거운 눈물이 남자의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때, 남자의 시야에 무지막지하게 부서진 출입문이 들어왔다. 언제 저게 저렇게 됐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사장의 노발대발하는 영상이 떠오르면서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그것은 에어컨을 켜고 마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형사 사건이었다. 남자의 소행이라고 의심할 게 분명했다. 모가지가 잘린 것에 앙심을 품고 문을 부순 거라고. 행여 문짝 값을 물어내라고 요구하거나 경찰에 신고하면 방법이 없었다. 생각이 그에 미치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일어나 달아나려는 순간이었다. 뚫린 문 저편에 검은 그림자가 서 있었다.

사장이었다. 사장 얼굴이 거의 흙빛이었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남자에게 공포가 엄습했다. '나를 죽일 것이다. 이번에는 진짜 모가지를 자를 것이다.' 바닥을 구르는 검은 머리통의 영상이 남자의 발목을 붙잡았다. 남자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콧김만 뿜던 사장이 천천히 입을 벌렸다.

“누가 에어컨 켰어?”

사장이 남자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고 남자의 코앞에 얼굴을 바짝 갖다 댔다. 남자로선 사장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넙데데한 인상의 소유자라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치켜뜬 눈썹에 이토록 숯이 많은 줄은 몰랐다. 자상처럼 길게 찢어진 눈 속으로 눈동자는 전혀 들여다보이지 않았고, 속눈썹은 아예 없는 듯했다. 벌름거리는 콧구멍 속으로 코털 몇 개가 비죽비죽 솟아 있었다. 머리카락은 몹시 빠글거렸는데 새로 펌을 한 것 같았다. 남자는 사장을 밀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자는 조용히 자리에 가서 앉았다. 김 부장은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다. 기안서를 작성하는 일에 온 신경을 집중할 뿐이었다. 사장도 자기 자리에 가서 앉았다. 잠시 사무실에 정적이 흘렀다.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사장이 수화기를 들었다. 남자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나를 기물 파손죄로 신고하려는 게 분명해.’

그러나 사장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16촌 여동생 어쩌고 하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촌수 따지기로 시작해서 차나 한잔 하자는 제의로 끝나는 소위 ‘작업용 멘트’였다. 수화기 너머의 인물은 경찰이 아니라 여자이며, 그것도 업소에 근무하는 40대 중반의 여성인 게 거의 확실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장이 여자를 꼬시다니. 사장이 호모라는 소문은 사실이 아닌 모양이었다. 꽃무늬 셔츠를 즐겨 입고, 가족 없이 혼자 산다고 해서 다 동성연애자는 아닐 텐데 왜 아무런 의심 없이 그 말을 믿었던 걸까. 타인의 삶을 매도하면서 자신의 초라함을 잊는 사람들 속에 나도 끼어 있었던 걸까. 남자는 통렬히 회의했지만 곧 자책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면한 현안은 사장의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이 아니었다. 문짝에 대해 물을 경우, 핑계를 생각해 놓아야 했다. 하지만 한 시간이 넘어가도록 사장은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남자가 사무실에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모양이었다. 남자를 해고한 사실도 잊은 게 분명했다. 남자는 모르는 척 가만히 있어보기로 했다. 어디 가서 나만한 직원을 구해? 이 월급에, 이 열악한 환경에 누가 붙어 있겠어? 나니까 그래도 참고 있는 거지. 남자는 더운 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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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문을 열어둘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더니만 뚫린 문으로 힐끗거리는 치들이 꽤 있었다. 뚫린 문 속의 풍경은 좀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아무 문제도 없어 보였다. 자기들끼리 잡담을 했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에 저토록 멀쩡한 사람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마침내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람 하나가 통과해도 될 만큼 커다란 구멍을 놔두고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문을 열고 나가면서 남자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저녁때 회식이나 하지. 조개구이 어때?”

저녁때 먹을 조개구이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사시사철 긴 소매를 입고 묵묵히 일하는 김 부장, 오늘은 회식에 참석하려나. 김 부장님! 남자가 나직이 불렀다. 김 부장은 대답이 없었다. 저 자는 장식용으로 영입한 인간이 틀림없어. 아니면 귀머거리던가. 남자는 혼자 중얼거렸다. 생각해 보니 남자가 입사한 후에 김 부장과 말을 섞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은커녕 얼굴을 본 적도 없었다. 그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언제 입사했는지, 몇 년을 근무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목소리는 어떤지. 그는 남자보다 먼저 출근했고 남자보다 늦게 퇴근했으며 늘 기안서 작성에만 매달려 있곤 했다. 남자는 처음으로 그가 단순히 과묵한 사람이 아니라 남모르는 사정을 갖고 있을 거라는 의심이 들었다.

그때였다. 기안서에 매달려 있던 김 부장이 갑자기 체머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얼마 남지 않은 머리털도 마구 쥐어뜯었다. 으으, 신음소리까지 뱉는 게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런 행동은, 말없이 일에 매달릴 때보다 더 무서웠다.

“왜 그러세요, 무슨 일입니까?”

남자가 물었지만 김 부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머리카락만 쥐어뜯었다. 깨알 같은 글자 속에 파묻혀 살더니 혹시 미친 게 아닐까. 김 부장은 오래오래 신음을 뱉고 마음껏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런 뒤였다. 탁탁 문서의 네 귀를 맞추더니 가만히 책상에 올려두었다. 기도라도 하는 걸까. 움직임 없이 시간이 흘렀다.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김 부장. 화장실도 안 가는 사람이 무슨 일일까.

“이런, 개 같은 세상!”

짤막한 발언이었다. 처음 듣게 된 그의 음성이 어찌나 단호하고도 부드러운지 남자는 한 번만 더 들려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김 부장이 한쪽 손을 번쩍 쳐들었다. 게임의 종료를 알리는 심판처럼 보이기도 했고, 화장실에 가기 위해 손을 번쩍 쳐드는 어린 학생 같기도 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남자는 그의 행동을 주시했다. 김 부장은 그 자세에서 손을 흔들더니만 풀리지 않는 의혹을 안고 기안서 속으로 쑥 빨려 들어갔다. 흡사 다이빙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더듬어 생각해보니 그가 뱉은 말은, 그냥 ‘개 같은 세상’이 아니라 ‘조개 같은 세상’인 것 같았다.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다. 작별 인사 치고는 지나치게 담백하지 않은가. 일 년을 같은 사무실에 머물렀던 사이인데. 남자는 혀를 찼다.

그가 남긴 것은, 한 번도 돌려 본 적 없는 낡은 회전의자와 서류 뭉치가 전부였다. 남자는 그가 사라진 자리로 천천히 다가갔다. 기안서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기안서는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는데 다만 가운데 비어있는 한 줄, 그 비좁고 하얀 여백 밖으로 와이셔츠 자락이 삐져나와 있었다. 옷자락은, 조개의 발을 닮은 듯했다. 남자는 살며시 기안서 속으로 옷자락을 집어넣어 주었다.

사무실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사장은 뚫린 구멍을 놔둔 채, 예의 수고롭게도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도 별수 없이 더위를 느끼는지 이례적으로 셔츠 단추 두 개를 풀었다. 하지만 에어컨을 틀라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사장은 서 있는 자세에서 묵묵히 사무실 내부를 훑어보았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지만 곧 주저앉고 말았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 의자가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몸의 일부가 녹아서 의자에 붙어버린 듯했다. 서 있는 사장 앞에 버젓이 앉아 있는 직원이라니. 관자놀이로 땀이 흘러내렸고 가슴이 따끔거렸다. 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무슨 이야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조금 전에 김 부장님이…….”

“이따 저녁에…….”

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먼저 말씀하십시오.”

“아닐세, 먼저 말하게.”

“아닙니다. 먼저 말씀하십시오.”

“미안한 말이지만, 오늘 하기로 한 회식을 미루었으면 하네. 네고에 제동이 걸려서 말이야.”

미안하다니, 천만다행이었다. 그런데 사장은 김 부장이 사라진 걸 모르고 있는 걸까. 사람이 사라진 걸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것 같기도 했다. 사장이 저렇게 나오는데 굳이 말단인 내가 김 부장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남자는 혼란스러웠다.

“사실은 저도 조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음, 그렇군. 나도 그다지 좋아하는 음식은 아닐세. 그럼 퇴근하게. 그리고…….”
사장이 뒤를 돌아보았다.

“왜 매일 그 자리에 앉지? 출입문 앞이라 어수선할 텐데, 저기 안쪽 자리로 옮기게나.”

“그곳은 김 부장님이…….”

사장이 말을 잘랐다.

“다음 주에는 꼭 회식을 하세. 메뉴는 자네가 고르도록.”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 김 부장의 존재를 정말 모르고 있었다. 그동안 김 부장을 달력 속의 야자수 그림으로 생각했는지도. 그나저나 김 부장은, 기안서 속에서 잘 살고 있을까. 그곳 더위는 좀 견딜 만하신가. 다음 회식 때는 뭘 먹지? 조개구이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먹을 것 같은데. 그런데 속이 왜 이렇게 타는 걸까. 김 부장이 있던 자리로 물건을 옮겨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거대한 폐각근이 자신과 의자를 꽁꽁 묶어버린 것 같았다. 남자는 의자를 밀면서 김 부장이 있던 자리로 갔다. 김 부장이 앉아 있던 의자를 밀쳐낸 뒤 그 자리에 몸을 밀어 넣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그 순간이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고개가 돌아가지 않았다. 제 맘대로 벌어지던 입처럼, 고개도 스스로 고정되기로 결정한 걸까. 그런 상태에서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남자는 묵묵히 기안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 ‘조개가 된 남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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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 1969년 경기 부천 출생.
· 인천대 국문학과, 한신대 문예창작 대학원 졸업.
· 2010년 전남일보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
· 발표한 소설로 <예술가의 탄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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