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건너 불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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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사람이 애써 개발한 기술문명은 도리어 종속과 위험을 강요하고 있다는 얘기는 문명 비판가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바로 이것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최근 소련에서 발생한 원자력 발전소 참사는 상상을 넘는 것 같다.
소련은 그 소상한 내막을 숨기고 있지만 서방 전문가의 그와 같은 분석은 거의 일치하고 있다.
지난 26일 소련 우크라이나 공화국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비공식적인 것이긴 하나 엄청난 규모인 것 같다. 수백명의 사상자를 냈고 30개도 넘는 마을을 폐쇄시켰던 57년도 우랄 지방 키슈빌시 부근의 원전 사고를 비밀로 붙였던 소련당국이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신속히 사고 발생을 인정하고 세계 기술진의 도움을 요청한 사실만 봐도 이번 원전 사고가 대단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번 사고의 심각성은 소련 내부에서 그치지 않고 소련과 인접해 있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들이 이미 심한 방사능 오염권 내에 들어가 전 세계가 방사능 오염 공포에 휩싸여 있다.
1939년 우라늄 235의 핵분열 발견으로 개막된 핵 시대는 이후 40여년의 역사를 지내면서 군사와 평화적 이용의 양면에서 연구와 개발에 급속한 진전을 보고 있다.
석유를 대체할 제4의 에너지로서 원자력은 인간생활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 말 현재 전 세계에는 모두 3백36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중이며 2억3천6백60만㎞의 전력을 여기서 얻고 있다. 또한 에너지의 양적 확보라는 측면에서 원자력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점점 높아갈 전망이다.
그러나 에너지를 얻는 수단으로서의 원자력이 절대적으로 안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동안 각국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원전사고가 입증하고 있다. 원자로와 원자 폭탄 두가지 다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의 핵분열 연쇄 반응을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다만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우라늄 1㎏이 순식간에 핵분열을 일으킨 반면 원자로 안의 우라늄은 10시간에 걸쳐 천천히 같은 현상을 일으키는 차이 뿐이다. 원자력 발전기술의 원조인 미국에서조차도 치명적은 아니지만 소소한 사고들이 연2천3백회 이상 일어났었다는 얘기도 있다.
따라서 원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위험 가능성에 대한 안전장치의 구비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번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경우 사고원인은 핵분열에 의해 발생하는 고열을 이겨내지 못해 생긴 설비의 용해현상(엘트다운)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저 농축 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한다는 이유로 서방의 원전에서 필수로 여기는 방호 구조물을 설치하지 않은데 원인이 있었다고 보고있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가 나면 그 피해가 광범하고 지속적이라는 데서 해당 지역이나 국가에 문제가 국한되지 않는다. 결국 세계 전체, 전 인류가 관심을 갖고 대처할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원전의 안전관리 문제는 범세계적인 공동기구에 의해 감시되고 관리돼야 마땅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4기의 원전에서 2백86만㎞(시설용량)의 전력을 생산, 전체 발전 시설용량의 18·4%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몇 차례의 사고로 가동이 중단된 일도 있었다.
이 기회에 우리나라는 사고예방을 위해 적어도 두가지 점에서 빈틈없는 대비를 해야한다. 하나는 그동안 수많은 사고를 통해 노하우가 그 어느 나라보다 많이 축적된 선진국 기술진의 부단한 점검을 받는 예방조치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소련의 원전사고는 강 건너 불일 수만은 없다.
또 다른 하나는 북한의 위협에 직면한 우리의 특수 여건에서 원전 방호에도 각별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 부국은 이 점에서 외국보다 더 많은 부담과 책임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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