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고 존치교실…858일 만에 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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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가자”

20일 낮 12시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2학년1반(명예 3학년1반) 교실. 긴 한숨을 내쉬던 한 엄마가 앞에 놓인 작은 종이상자를 들며 한 말이다. 상자에는 아들이 사용했던 유품이 들어 있었다. 이 엄마는 상자를 들고 나오며 계속 눈물을 흘렸다.

다른 한 엄마는 “창고 같은 곳에 아이의 유품을 둘 수 없다”며 아들의 유품이 든 종이 상자를 자신의 차에 싣고 학교를 빠져나갔다. 이 엄마는 “책상과 의자도 가지고 가고 싶지만 그건 안 된다기에 이것만 가지고 나왔다”며 “아이 방 책상 위에 올려놓을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세월호 침몰로 희생되거나 실종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사용했던 ‘존치 교실’(4·16기억교실)이 이날 이전을 시작했다. 2014년 4월 16일 사고 후 858일 만의 일이다.

존치 교실의 기억물품 이전은 2학년 1반부터 시작됐다. 먼저 유가족과 안산시민·자원봉사자 등이 물품이 든 종이상자를 1층으로 옮겼다. 1층 로비에는 1~6반에서 가져온 상자 145개가 가지런히 놓였다. 기독교와 불교 등 국내 4대 종단 측은 종교의식을 거행했다.

이어 책상과 의자가 든 큰 종이 상자가 무진동 탑차량 6대에 나눠 실렸다. 7~10반의 물품 상자는 이날 오후 늦은 시간까지 같은 방법으로 옮겨진다. 칠판과 게시판 등 공용물품은 21일 이전할 예정이다.

1층 로비에 앉아 기다리던 유족들은 물품 상자와 책상 등이 든 상자가 옮겨질 때마다 깊은 한숨을 쉬었다. 교실로 올라 온 한 엄마는 아들의 유품이 든 상자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한 아빠는 상자를 어루만지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또 교실 한켠에서 아들의 유품 상자를 만지던 한 엄마는 끝내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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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자들은 학교에서 1.3km 떨어진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에 임시로 보관된다. 앞으로 ‘416안전교육시설’이 건립될 때까지 학급 별로 10개의 공간에 보관된다.

이날 존치교실 이전은 순탄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당초 이날 오전 8시40분부터 옮기려 했으나 임시 이전 장소의 공간 부족 등의 이유로 유가족들이 처음에는 이전을 거부했다. 이후 유가족들과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협의를 가진 뒤 낮 12시부터 재개됐다.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부족한 게 많고 아쉬운 것도 많지만 유가족과 국민들께 드린 신뢰를 지키기 위해 교실을 옮기기로 했다”며 “부족한 부분은 향후 도교육청과 실무협의를 통해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물품을 싣는 차량 중 한 대에 ‘이사’라는 글씨가 보이자 “소중한 아이들 유품을 짐짝 취급하는 것이냐. 글씨를 가리고 왔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일부 유족들이 반발해 1시간여 동안 이전 작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당초 약속대로 오후 3시20분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유품 상자를 직접 들고 안산교육지원청으로 향했다. 다만 유족들 중 7명이 임시 시설로 이전하는 것을 반대해 해당 학생의 유품은 교실에 두기로 했다. 또 실종학생 4명의 물품도 교실에 그대로 보관하기로 했다.

단원고 관계자는 “유족이 이전을 거부한 7명과 실종 학생의 물품은 한 개의 교실에 별도로 보관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며 “물품을 모두 이전하면 주말을 이용해 교실을 리모델링한 뒤 10월부터 일반 교실로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안산=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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