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복지 수술, 시장 살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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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인 경기침체에 빠진 유럽 국가들이 시장지향적 제도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제가 좋지 않을 때야말로 유럽의 반(反)시장적 복지.노동문제 등에 대한 개혁을 단행할 수 있는 적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22일 유럽 국가들이 10년 만에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복지.노동 시스템을 과감하게 수술대에 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침체에 빠진 유럽경제=유럽경제는 최근 실업률의 증가와 소비침체에 이어 유로화 강세로 수출경쟁력까지 떨어지면서 유로지역 평균 경제성장률이 0%대를 보이고 있다.

특히 유로권 경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독일 경제의 침체는 심각하다. 독일 중앙은행(분데스방크)은 21일(현지 시간) 독일경제가 2분기에도 회복하는 데 실패했으며 당분간 회복의 징후가 없다고 밝혔다.

독일경제는 지난해 4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보인 데 이어 올 1분기에도 다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해 일본과 같은 장기 경기침체에 빠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제는 바꾸자=변화의 움직임은 복지와 노동문제로 중병을 앓고 있는 '유럽의 환자' 독일에서 두드러진다.

독일 정부는 지난달 초 노조와 교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토요일 점포 영업시간을 연장했다. 소비를 늘려 경제를 살리려는 고육책이었지만 시장과 소비자들은 당연히 정부 조치를 환영했다.

독일은 최근 획기적인 노동.복지 개혁안인 '어젠다2010'추진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독일 정부와 야당은 21일 매년 2백60억달러의 비용을 줄이는 통일 이후 최대의 보건의료 개혁안에 합의했다. 기업과 노동자가 각각 반씩 부담하는 건강보험료 납부액은 줄이되 본인 부담 진료비를 늘리고 담배세를 인상하는 것이 골자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이날 "보건의료 제도개혁에 대한 합의가 연금보험.요양보험.노동시장 등 다른 분야의 개혁에도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프랑스 하원은 이달 초 노동계의 강력한 반대를 물리치고 연금 납입 기간을 늘리는 내용의 프랑스 연금제도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노동계는 대대적인 반대 파업과 시위를 벌였지만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국민 여론에 부닥쳐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프랑스 정부는 국영기업 민영화와 기업이 부담하는 사회보장 비용의 축소 등을 추진 중이다.

오스트리아도 퇴직금을 축소하고 재정상태가 악화된 연금 제도를 손질하는 등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업규제를 풀어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정책도 추진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지난해까지 신규 창업에 최소 6주 이상 걸렸지만 올해부터는 온라인 창업절차를 통해 단 하루 만에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도 노동시장을 미국식으로 바꾸는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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