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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두 번 본 정진석, ‘덕혜옹주’ 본 김종인·박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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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눈물을 훔쳤던 덩치 큰 부산 남자. ‘광해’를 보고 눈이 퉁퉁 부어 카메라 앞에 서지 못했던 실향민 가족.

영화 관람도 여야 엇갈려

여야의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정치인들의 ‘영화 정치’였다.

지난해 6월. 현직이던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사석에서 만났다. 김 전 대표가 “피란 때 ○○○란 사람이 우리 집 문간방에 살았는데 니 아나?”라고 물었다. 문 전 대표는 “영화가 딱 우리 집 얘기인데…. 그분은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사석에선 말을 편하게 쓰는 경남중 선후배의 대화 소재는 영화 ‘국제시장’이었다.

두 사람은 2014년 12월 31일 각자 부산을 배경으로 한 ‘국제시장’을 봤다. 한국전쟁과 흥남철수, 파독 광부·간호사, 베트남전 등 현대사를 관통하는 영화를 본 부산 남자들은 울었다. 김 전 대표는 “역사의 아픔에 눈물이 났다”고 말했고, 문 전 대표는 “이산가족 상봉부터 계속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문 전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영화를 보수적으로만 해석하는 건 온당치 않다”며 통일을 강조했다. 당시 그는 영남권과 중·장년층으로의 지지층 확장을 고심하던 때였다. 영화를 당 실버위원회 장년층과 함께 관람했다는 점도 그런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청와대 회의에서 ‘국제시장’을 언급했다. 박 대통령은 “최근에 돌풍을 일으키는 영화에도 보니까 부부 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들리니까 국기 배례를 하고…”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은 영화를 보면서 이산가족 상봉보다 애국심과 경제성장이 인상 깊었음을 보여준다.

박 대통령이 ‘국제시장’을 관람하던 날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던 안철수 의원은 상영관을 잡지 못했던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란 영화를 국회에서 관람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존을 핵심으로 한 자신의 경제 정책인 공정성장론을 피력할 때다. 그는 2011년엔 ‘허블3D’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내레이션을 맡아 목소리 배우로 출연한 경력도 있다고 한다.

최근 여야는 ‘인천상륙작전’과 ‘덕혜옹주’를 놓고 갈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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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사진)가 지난 1일 당 지도부와 함께 ‘인천상륙작전’을 관람했다. [뉴시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지난 1일 당 지도부와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의 첩보전을 다룬 인천상륙작전을 봤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와 건국절 논란으로 ‘안보 전쟁’이 벌어진 시기에 고른 영화였다. 정 원내대표는 ‘강추(강력 추천)’라는 말과 함께 “대한민국을 지킨 무명용사의 헌신에 옷깃을 여미게 되는 영화”라고 평가했다. 그는 18일엔 아예 영화에 등장하는 대북첩보부대 전우회와 유족을 극장으로 초청해 영화를 다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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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는 광복절이던 15일 이재명 성남시장과 함께 ‘덕혜옹주’를 봤다. [뉴시스]

야당은 ‘덕혜옹주’를 택했다.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지난 4일 회의에서 “위정자가 제대로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면 국민이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다”는 영화평을 내놓으면서 ‘덕혜옹주’는 ‘야당 영화’로 자리매김했다. 국민의당은 8일 극장을 통째로 빌려 ‘덕혜옹주’를 관람했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영화를 보며 네 번 정도 눈물을 흘렸다. 불행한 역사를 피하려면 국민의당이 집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위안부 피해자 쉼터를 방문하겠다”며 영화를 현실 정치로 연결시켰다.

더민주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도 15일 이 영화를 봤다. 이날은 영화보다 동행한 이재명 성남시장이 눈길을 끌었다. 이 시장과 같이 영화를 본 이유를 기자들이 묻자 김 대표의 부인 김미경 교수는 “눈치 못 채겠느냐”고 되물었다. 김 대표의 호출로 ‘덕혜옹주’를 다시 보게 된 이 시장은 기자들에게 “대선에서 역할을 하겠다”는 말을 했다.

대선에서 영화는 압축된 메시지로 활용됐다. 박근혜 당시 후보는 아동 성폭행 사건을 다룬 ‘돈 크라이 마미’를 관람했다. 영화의 모티브는 ‘4대 악 척결’이라는 핵심 정책으로 연결됐다. 문재인 후보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본 뒤 관람석에서 5분 넘게 눈물을 쏟았다. 이 장면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자아내며 야권 표심을 결집시켰다. 그는 대선 패배 후에도 노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영화 ‘변호인’을 관람하면서 정계 복귀를 위해 몸을 풀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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