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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알베르토의 문화탐구생활] 자전거 여행, 어디까지 가 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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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휴가철이다.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산과 바다 사진이 자주 올라오고, 도시의 지하철과 도로는 한산해졌다. 아직 피서를 가지 못한 사람들도 머릿속은 온통 여행 떠날 상상으로 가득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자전거 여행’ 예찬론자다. 고등학생 때부터 여름마다 자전거 여행을 다녔다. 그런데 내가 자전거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데는, 그만한 계기가 있다.

알베르토의 문화탐구생활

이탈리아는 365일이 휴가철 같은 나라다. 매년 약 6000만 명의 외국 관광객이 이탈리아를 방문하며, 국민의 약 10%가 관광업에 종사한다. 특히 여름이면 아예 몇 주간 문 닫는 회사도 많다. 운하의 도시로 유명한 베네치아 출신인 나는 매일 수많은 관광객과 부대끼며 자랐다. 관광 수입으로 먹고사는 호텔·카페·술집·박물관·유람선 등의 흥겨운 정취를 피부로 느끼면서 말이다. 여행자에게는 연중 가장 행복할 재충전의 시간이, 내게는 마냥 좋아 보이진 않았다.

관광지에 살다 보면 여행의 부정적인 이면도 많이 접하게 된다. 먼저, 환경 문제다. 피서객이 늘어날수록 환경 오염은 심해진다. 대형 호텔·리조트나 유람선에서는 매일 엄청난 양의 비누·샴푸·음식·에너지 등이 소비된다.

낙후된 관광 시설은 주변 경관을 되레 해치기도 한다. 유명 관광지에만 피서객이 몰리면서 생기는 지역적 딜레마도 있다. 인기 있는 도시들은 큰돈을 버는 대신, 현지인의 일상과 환경이 훼손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아름다운 풍광을 가졌음에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도시들은,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지 않아 최악의 경우에는 주민들이 떠나기도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휴가를 즐기면서도 지역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 친환경 여행 방법은 없을까. 내가 얻은 해답이 바로 자전거 여행이었다.

그 생각은 14년 전 어느 여름 갑자기 떠올랐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나는 사촌 형과 두 명의 친구와 함께 자전거에 텐트를 싣고 무작정 길을 떠났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부터 베네치아, 알프스 산맥의 일부인 돌로미티 산맥까지 다리 힘이 닿는 데까지 자전거 도로를 따라 달렸다. 산속이라 자동차는 거의 다니지 않았다.

올리브·포도·해바라기밭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중세 시대에 만들어진 마을 대부분은, 외부 공격을 막기 위해 집들이 언덕 정상에 모여 있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길이 나온다’는 교훈을 선물 같은 산바람을 맞으며 신나게 만끽했다.

그러다 내리막길에서 빗줄기라도 만나면 얼굴이 얼마나 따가웠는지…. 모두 즐거운 추억이다. 종일 자전거를 타다 캠핑장에 도착해 요리를 만들어 먹거나, 마을 꼭대기에서 와인 한잔의 여유를 맛보았다. 아주 가끔은 하룻밤 정도 좋은 호텔에 묵으며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정찬을 즐길 수도 있었다.

형편에 맞춰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지역 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자전거 여행의 장점이다. 환경 오염 걱정이 없고 운동 효과도 높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서두르지 않아도 하루 100㎞는 거뜬히 이동 가능해 여유롭게 주변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도 자전거 여행의 좋은 점이다.

그뿐 아니라 텐트를 실은 자전거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때문에, 현지 주민과도 쉽게 친해질 기회가 많다. 그 지역의 분위기를 그만큼 피부로 겪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비경을 발견하는 보너스도 있다. 토스카나 지역을 여행하며 내가 만났던 피틸리아노, 몬테리지오니, 라디코파니 같은 고풍스러운 중세 도시들처럼 말이다.

한국에서도 나는 자주 자전거로 길을 나선다. 지난해 9월에는 ‘비정상회담’(2014~, JTBC)에서 만난 친구 제임스 후퍼 그리고 몇몇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경북 울진에서 태백산과 강원도를 거쳐 경기도 양평에 이르는 4박 5일간의 여정이었다.

경북 영주를 비롯해 강원도 정선·평창의 조용하고 아늑한 시골 마을을 알게 된 것도 자전거 여행 덕분이다. 하나 귀띔하자면, 자전거로 여행할 때는 최대한 짐을 줄여야 한다. 특히 옷은 라이딩용을 포함해 두 벌이면 충분하다.

캠핑장에서 여벌로 갈아입고, 입었던 옷은 빨아서 다음 날 아침까지 말리면 된다. 텐트와 휴대용 버너·냄비 하나쯤은 필수. 참, 단백질 공급용 참치 캔도 몇 개 챙기면 기운이 빠질 때 여러모로 요긴하게 쓰인다.

시간적 여유만 있다면 이만큼 친환경적인 여행 방법이 또 있을까. 게다가 친구나 애인과 함께 자전거로 여행하고 나면, 힘들고 불편한 순간마저 평생 잊지 못할 추억거리가 된다. 세월이 흘러도 두고두고 얘기할 만한 무용담을 얻는 셈이다.

휴가를 통해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하고 다시 새롭게 일할 에너지를 얻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기왕이면 이젠 자연과 그 지역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는 자전거 여행을 택해 보면 어떨까.

글 알베르토 몬디.
맥주와 자동차에 이어 이제는 이탈리아 문화까지 영업하는 JTBC '비정상회담' 마성의 알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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