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OC 선수위원 된 유승민 "진심을 다한 선거운동, 좋은 결과 나와 기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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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아테네 올림픽 탁구 금메달리스트 유승민(34) 삼성생명 코치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 뽑혔다.

유 코치는 총 5815명이 투표해 독일 펜싱의 브리타 하이데만(1603표)에 이어 2위(1544표)로 상위 4명을 뽑는 IOC 선수위원에 당선됐다. 유 코치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태권도 문대성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IOC 선수위원이 됐다. IOC 선수위원은 직전 대회 참가선수와 이번 대회 참가선수로 그 자격이 제한되며 기존의 IOC 위원과 동일한 대우와 발언권을 갖는다.

유 코치는 "그동안 응원 많이 해주셔서 감사하다. 지난달 23일 도착해서 다음날 선거 시작함과 동시에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다. 결과장에 가지는 못 했다. 너무 떨릴 거 같아서 메시지를 전달받고 왔다. 기쁨도 있지만 좀 더 책임감이 무거워졌다.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서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소감을 밝혔다.

다음은 유 코치와 일문일답.

- 이신바예바, 무로후시 고지 등 유력 후보들이 많았다. 이들을 이긴 비결은.

"현장에 와보니까 선수들이 선수위원 선거에 대해 정보가 없었다. 그래서 발로 뛰는 게 중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매일 아침 7시부터 저녁 늦게까지 선수들에게 인사했다. 내 진심으로 많이 웃어주고, 힘 실어주고 어떤 선수들은 같은 자리에서 밝은 웃음으로 맞아줘서 힘났다. 그런 진심이 보여졌기에 크게 기대는 못 받았지만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 한국 선수들도 투표를 많이 한 것 같은데.

"저를 뽑아주던, 안 뽑아주던 내가 인사를 25일간 받아준 선수들에게 감사하다. 나도 선수를 오래했기 때문에 얼마나 민감하고 방해받고 싶지 않은지 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선거 운동을 했다. 내가 끝나는 날까지 거기 왜 서 있는지 모르는 친구도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날에 투표를 해달라고 하니까 반갑게 '거기 있었구나' 하는 친구도 있었다. 우리나라 선수들도 고생을 많이 했다. 나를 지지해준 선수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 선수 시절에 이어 우리나라 IOC 선수위원 단일 후보로 뽑혔을 때 안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많았다. 결과로는 뒤집기로 좋은 결과를 얻었는데 승부사적 기질이 있는 것 같다.

"기대를 안 해주셨기 때문에 부담도 없었다. 한국에서 올 때부터 어려울 거라는 전망을 많이 들었다. 그때마다 나를 응원해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힘을 얻었다. 내가 뽑혀서 왔는데 어설프게 선거 활동을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진심을 다 했다. 하루가 정말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외로웠다. 그래도 끝나고 나니까 기분 좋다."

- 개인뿐 아니라 한국 스포츠에도 기여하는 바가 커질 것으로 보이는데.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있는데 언론을 통해 많이 접했고 IOC와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 행정가로서 아직 업무를 많이 해보진 않았지만 최대한 빨리 업무를 익혀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하겠다. 나는 선수위원으로 당선됐는데 개인의 영광을 떠나서 선수들을 위해서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만난 1만500명의 각자 고민이 있더라. 선거 활동 하면서 많이 느꼈다. 그 선수들도 관심있는 분야가 각자 다르다. 은퇴 후의 고민에 대해 공유하고 싶다고 했을 때 선수들의 반응이 좋았다. 그런 부분에서 좀 더 내가 갖고 있는 능력이 있다면 발휘해서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수위원이 되겠다."

- IOC 선수위원으로서 어떤 부분을 더 기여하고 싶나.

"선수를 만나면서 많은 질문을 받았다. 선수들의 가장 큰 이슈는 도핑도 아니고, 어떤 이슈도 아니었다. 선수위원회가 선수들을 위해서 뭘 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도 선수위원 선거 후보자로서 답변을 구체적으로 해줄 수 없었지만 선수들이 자신의 커리어를 쌓기 위해 노력하면 선수위원회는 도와줘야 한다. 그러나 선수들이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선수들과 위원회의 관계를 친밀하게 쉐어할 수 있도록 하고, 구체적인 이슈에 대해서 발로 뛰고 먼저 다가갈 수 있는 위원이 되겠다."

- 선수들에게 왜 나를 뽑아줘야 한다고 했나.

"은퇴해서 시간이 많다고 했다(웃음). 너희들을 만날 시간이 많으니까 나를 뽑아달라고 했다."

- IOC 선수위원 첫 일정은 무엇인가.

"우리 집을 제일 먼저 방문할 것이다. 21일 오전에 총회하고 IOC 선수위원회와 미팅하고 폐회식 참석 일정이 있다. 그때부터 공식 일정이 바뀌었는데 선수위원 카드로 바뀌었다. 폐막식날 공식적으로 나온대더라. 아직까진 정신도 없고 어벙벙해서 공식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정이 잡히면 알리겠다."

- 외로운 싸움을 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도움은.

"룰이 타이트하다보니까 후보자들끼리도 탄식하곤 했다. 같이 선거활동 열심히 한 후보자들끼리 서로 의지하면서 얘기도 많이 나누고 정보도 많이 공유하면서 버틸 수 있었다. 내 친구들이 응원하려고 한국에서 오기도 했다. 탁구대표팀이 메달 획득엔 실패했지만 아쉽더라. 특히 영식이, 상수는 처음 나온 올림픽에서 아쉽게 됐고, 주세혁선배는 마지막인데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그 선수들의 응원을 받고 잘 하게 됐다. 체육회 관계자, 임원에게도 감사하다."

-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금메달을 땄을 때와 이번 선수위원이 된 것과 어떻게 기분이 남다른가.

"2004년에는 팀과 같이 나왔다. 이번에는 혼자 비행기 타고 와서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선거로 인해서 모든 걸 혼자 처리해야 하는 룰에서 뛰었다. 솔직히 하루가 너무 길었다. 힘들었다. 그러면서도 느낀 건 강문수 탁구대표팀 총감독님이 '원 모어'라는 말을 많이 한다. 남들보다 1분 더 하면 분명히 된다고 했다. 들어가려고 해도 선수 한 명이 보이면 못 들어가겠고, 이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게 선수들한테 통한 것 같다. 제가 금메달을 땄기 때문에 이런 자리에 오지 않았을까. IOC 선수위원장이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고 하더라. 여태껏 25년간 필드에서 내가 나 자신을 위해서 했다. 지금부터는 내 커리어를 위원회, 선수, 한국 스포츠 발전에 헌신하는 포지션이 됐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더 중요하고,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

- IOC 선수위원 도전하게 된 계기는.

"런던 올림픽을 나갈 때 힘들었다. 후배와 경쟁 한 자리를 놓고 겨뤘다. 그 시기가 선수로선 가장 힘들었다. '유승민은 안 될 거야'라면서도 버틴 거는 IOC 선수위원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문대성 위원과 2004년에 같이 룸을 썼다. 2008년에 어떻게 했는지 봐왔기 때문에 느낀 것도 있었다. 런던 끝나고부터 내 동료인 장미란, 진종오 선배가 언론에 노출되다보니까 자신이 없었다. 2014년에 지도자가 돼서 현장에서 일하게 됐다. 그런데 그 시기에 누군가 저한테 조언을 해줬다. '마지막 기회인데 한번 나가서 가능성 있든 없든 도전하는 게 의미있지 않겠나'라고 하더라. 그러면서 '한번 나가봐라' 하더라. 그래서 재결심을 하고 나가게 됐다."

- 8년 뒤엔 어떤 선수위원으로 기억되고 싶나.

"8년 뒤에 열심히 해서 정식 멤버가 되는 꿈을 꾸고 있다. 선수위원 하면서 명함뿐 아닌 실질적으로 업무를 잘 처리해서 인정받는 선수위원이 되고 싶다. IOC에서도 아시아인으로 인정받고, 선수들과 약속한 게 대화를 들어준 선수들한테 '너희들을 위해서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했다. 한번 부딪혀서 부족한 게 많지만 열심히 위원 생활해서 8년 뒤엔 모든 선수들이 박수쳐줄 수 있는 위원이 되고 싶다."

- 문대성 위원이 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정말 그때 대단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태권도복을 입고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게 쉽지 않더라. 낯뜨겁기도 한데 선수들과 포옹하고 악수하고, 오기 전에도 조언을 해줬다. 될 수 있는 한 많이 만나고 다가가라고 조언해줬다. 그런 조언들을 토대로 열심히 했다.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식당 앞 도로, 뱃지 나눠줄 수도 없게 했고, 브로셔 하나 들고 운동했다. 그래도 선수들이 투표를 해줘서 감사하다."

- 선수 유승민은 어떤 사람이었나. 그리고 행정가 유승민은 어떤 사람이고 싶나.

"선수 유승민은 눈빛이 날카로운 사람? 행정가 유승민은 따뜻하게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다."

- 혹시 2위라는 결과는 어떻게 받아들이나.

"투표율이 전보다 낮을 거라는 생각은 했다. 투표를 하는 선수들에게 노란 스티커를 붙여주는데 AD 카드에 붙어있나 봤다(웃음). 그런 상황이었는데 2위를 내심 자신있기는 했다. 50% 정도. 내 모습을 본 다른 후보자들도 충분히 너는 받을 만 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사실 1인 다표다 보니까 나를 뽑은 사람이 다른 사람도 뽑고 그런 운이 따라줘야 했다. 예측을 그래서 못했다. 그래도 2위라는 결과가 놀라웠다."

- 어떤 제한된 룰이 있었나.

"문대성 위원 때와 비교하면 식당 앞에서 딱 한 군데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각 종목을 대표하는 운동복을 입어서도 안 되고, 이면도로에서도 못 하게 했다. 우리한테 준 노란 뱃지가 있는데 그 뱃지도 노출되면 안 된다. 그 제한된 룰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제3자가 쉐어링하는 것도 안 되게 돼 있다. 누군가 내 이름을 태그해서 올리면 안 됐다. 룰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리우=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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