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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9곳 중 2곳 과태료…시늉만 하는 단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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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민상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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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상
경제부 기자

“실제로 5분 이상 문을 열어 놔야 하고, 가게에 들어가 에어컨이 켜져 있는지 직접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지난 11일부터 전국 4119개 상점을 대상으로 ‘문 열고 냉방’ 영업 행위를 단속한 결과 지금까지 두 곳만 과태료를 부과했다는 발표가 나간 뒤 나온 정부 측 해명이다. 처음 적발되면 경고를 받고, 2번 연속 적발되면 50만원의 과태료를 낸다. 최대 과태료는 300만원이다.

현장에서 직접 상점들을 단속하는 지자체 공무원은 “동영상을 찍어야 하는 데다 ‘손님이 열고 갔다’며 반발하는 상인이 많다”며 “실제 과태료 부과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오후 단속만 피하면 된다”는 식의 반응이다. 서울 명동에서 음식점을 하는 김모(52)씨는 “예전 같지 않아 손님이 별로 없다. 전기요금이 많이 나오더라도 문을 열어 놓을 수밖에 없다. 그래야 손님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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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 고 하는 냉방영업에 대한 단속 첫날인 지난 11일 서울 중구 명동 일대 의류매장 모습. [사진 오종택 기자]

건물 내 실내 평균 온도를 26도 미만으로 떨어뜨리면 과태료를 부과했던 정부 단속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누진제가 붙지 않는 일반용 전기요금을 이용해 에어컨을 트는 일부 영화관과 카페의 실내 온도는 20도 밑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안내데스크에서 무릎 담요를 빌리는 방법이 ‘영화관 활용 팁’으로 알려질 정도다.

서울에서 60㎡ 크기의 카페를 운영하는 김모(40)씨도 “7월 전기요금이 40만원 나왔다. 예년과 크게 차이가 없어 부담은 없다”고 말했다. 한국전력의 전기 요금계산기로 7월 한 달간 700㎾h를 소비했다고 가정했을 때 가정용 전기요금은 29만8020원(한시 감면 시 26만1130원)이 나오지만 일반용은 11만9130원(계약전력 5㎾, 저압전력 사용 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04~2013년 산업용 전기요금은 연평균 5.8% 인상된 반면 일반용 전기요금은 2.5% 인상에 그쳤다. 전체 평균 인상률 3.9%보다 낮은 수준이다. 반면 일반용 전력 소비는 상당하다. 홍준희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일반용 전기를 사용하는 곳은 전체의 14.4%에 불과하지만 전력 소비는 22.4%에 달했다. 홍 교수는 “정부가 일반용 전기요금을 낮게 책정해 전기 낭비를 조장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제 일반용 전기요금도 현실화해야 한다. “자영업자 반발이 커 일반용 전기요금은 쉽게 손을 대지 못한다”는 정부 측 해명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정전사고 우려와 정치권 반발 등 이런저런 이유로 2004년부터 ‘다음 정부에서 고치겠지’라며 미뤄 오다 사고가 터진 게 주택용 누진제 아닌가. 상업용 시설도 적절하게 전기요금을 부담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생긴 이익을 더위에 취약한 아이와 노인이 있는 가정에 돌리면 된다.

김민상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