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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홍제암서 장담그기 17년|대법화 공양주보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공양(식사) 할때마다 장맛 좋다는 얘기 듣는걸 생각하면 장담그는 수고야 별것 아니지요.』
해인사 홍제암에서 17년째 장담그는 일을 맡고있는 대법화공양주보살(57). 웬만한 어른키 못지않은 큰 독에서 허리께까지 올라오는 작은 독에 이르기까지 50여개의 크고작은 질항아리를 채우고 비우며 돌보는 일이 번거롭다기보다 차라리 즐거움에 가깝다고 말한다.
본명도, 절에서 식사시중을 맡는 공양주보살이 된 사연도 밝히기를 마다하는 그는 장담그는 일에 대해서만 자세히 설명. 그밖에 철따라 산나물 뜯고 도토리 주워다 묵을 만드는 등의 사찰음식에 대해서라면 얼마든지 얘기하겠단다.
그가 해마다 음력 동지달에 메주쑤는 콩은 3가마. 1백장의 메주를 짚으로 엮어 천장에 매단다. 『콩 30가마를 쑤는 큰절 (해인사 본사)에 비하면 별것 아닌셈』이라고.
방 하나의 천장을 가득 메웠던 메주를 섣달그믐께 떼어내 까맣게 뜰때까지 스무날쯤 밖에 내놓았다가 물로 씻어 이틀쯤 말리면 바야흐로 장담그는 철. 음력 정월중 손없는 날을 골라 간장과 고추장을 담근다.
어른키만한 4개의 질항아리에다 메주를 넣고 소금물을 부어 간장을 담그는데 달걀이 절반 남깃 떠오를 정도면 간이 알맞는다는것.
여기 띄웠던 숯·빨간고추·참깨·대추를 5월에 메주와 함께 건져낸 다음 체로 밭쳐 문종이로 항아리를 봉하면 간장담그기가 끝난다 (간장에서 건져낸 메주로는 곧 된장을 담근다) .
고추장은 누룽지로 엿을 고아 담그는게 특징. 메줏가루와 고춧가루를「누룽지엿」에다 버무릴때 5년 묵은 간장과 함께 소금도 약간 넣는데 간장만으로 간을 맞추면 고추장 빛깔이 너무 검어지기 때문이란다. 1백일쯤 지나 햇고추장을 처음 차려 낼 때면 웬지 마음이 조마조마하다고. 다행히 언제나『올해 고추장도 일품』이라는 찬사를 듣곤해서 기쁘다며 웃는다.
이 절에서 늘 함께 지내는 식구는 6명이지만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 일년내 하루평균 스무명가량이 그의「꽤 좋은 장맛」을 즐긴다는 것.
맛있게 장담그는 비결이 더있느냐고 묻자『장맛은 어디까지나 물맛이니까 비온 직후물이 흐릴때는 장을 담그지 않고…』하다가『우리 장독대엔 이렇게 볕이 잘드니까 장맛이 더 좋은거겠지요, 뭐』하며 솜씨자랑을 겸연쩍어한다. <합천=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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