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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더민주 강령 ‘노동자’ 문구 복원…김종인 “이래선 집권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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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당 강령에서 ‘노동자’란 표현의 삭제 여부를 놓고 시끄러웠던 더불어민주당 강령 논란이 17일 일단락됐다. 이날 오전 당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전당대회준비위원회(전준위)에서 올라온 당 강령 개정 문제를 논의한 결과 ‘노동자’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등 이전 내용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김종인 비대위 대표는 “이런 식의 자세라면 집권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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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오른쪽)는 17일 비대위원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소통에 대한 인식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뉴시스]

강령 논란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전준위 강령분과에서 지난달 20일 강령개정안 초안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전준위는 당 강령의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 향상을 위한 노력을 존중한다”는 구절에서 ‘노동자’를 삭제하고 시민만 남겨두기로 했다. 노동자란 표현을 삭제한 이유는 시민이란 단어가 노동자를 포괄하기 때문이라는 게 전준위 입장이었다.

‘노동자’ 삭제로 정체성 논란 일자
비대위, 일주일 만에 다시 넣기로
지도부 “단순한 글자 수정 해프닝”
김 대표 “지금이 이념논쟁 할 땐가”

전준위는 강령개정안을 지난 10일 발표했다. 그러자 당내에서 논란이 벌어졌다. 당 대표 후보들이 일제히 “당 정체성 훼손”이라고 들고 일어났다.

추미애 후보는 기자회견을 열고 “당 정체성을 흔드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고, 김상곤 후보도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으면 사회정의도, 경제민주화도, 민주주의도 없다”고 반발했다. 이종걸 후보도 “당의 지향성과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간과한 것”이라고 반대했다.

그러자 비대위는 일주일 뒤인 17일 논란이 됐던 당 강령의 구절을 “노동자·농어민·소상공인 등 서민과 중산층의 권리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로 다시 바꿔서 의결했다. 정체성 논란이 벌어지자 결국 원래대로 복귀한 것이다.

지도부는 이번 논란이 단순 문구 수정 과정에서 벌어진 해프닝이라고 해명했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비공개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보고를 들어보니 전혀 (정체성 등을 고려해) 논의된 게 아니었다”며 “문제된 것(노동자)을 다 넣고 끝내자고 해 회의는 10분 만에 끝났다”고 설명했다.

당시 노동자란 표현을 삭제하는 데 참여했던 전준위 민홍철(재선·김해갑) 의원 역시 “논란 없이 정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만간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김 대표는 정체성 논란 자체를 비판하고 나섰다.

김 대표는 이날 기자와 만나 “지금은 정체성을 이야기하면서 이념 논쟁을 벌일 때가 아니다”며 “전 세계적으로 정당이 이념이나 정체성을 찾는 곳은 더민주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런 뒤 “대한민국의 국력이 세계 11번째라고 하는데, 그럼 정치도 거기에 합당하게 따라가야 한다. 지금 정체성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웃긴 이야기가 없다”고 말했다. “세상이 지금 어떻게 바뀌었는데, 국민들도 변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솔직히 더민주가 ‘노동자’를 강령에 넣어 놓고 지금까지 제대로 한 일이 뭐가 있는가. 형식적으로 이름만 적어두고 우리가 누굴 위했다고 말하는 것은 수권 정당의 자세도 아니다”고 말했다. “노동자란 단어도 보통 ‘근로자’라고 바꿔 쓰는 게 맞고, (노동자는) 좋은 표현이 아니다”라는 말도 했다.

당 일각에서 노동자란 표현 삭제의 근원으로 자신을 지목하는 것에 대해서도 정면 반박했다.

김 대표는 “나는 강령이 어떻게 고쳐졌는지도 모르는데 전부 내가 한 것처럼 생각하는 그 사고방식이 이 당의 문제점”이라며 “앞으로 전당대회가 끝나면 당이 제멋대로 갈 게 뻔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렇게 정체성 싸움을 하다가는 수권정당이 못 된다. 아무리 치료하려고 해도 환자가 치료받지 않겠다고 발버둥 치면 그 환자는 못 고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세 명의 대표 후보는 중도 확장을 강조하는 김 대표와는 노선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대해선 세 후보 모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선명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8·27 전당대회 이후 더민주의 노선이 다시 김 대표 이전 강성야당으로 돌아갈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지상 기자 groun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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