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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칼럼] 日 오타市 '영어 공용어'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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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군마(群馬)현 오타(太田)시는 2005년 4월부터 일본어 이외의 모든 수업을 영어로 하는 초등학교를 발족시킨다. 처음엔 초등학교 1학년 2학급과 4학년 1학급으로 시작해 중.고교로 연결시킨다. 학생들은 12년간 계속해 '영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영어로' 배운다.

이런 교육의 유효성은 외국에선 이미 입증됐지만 일본에서는 문부과학성이 저항하는 바람에 극소수의 예를 제외하고는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해 정부가 구조개혁특구 제도를 도입하면서 오타시는 외국어교육 특구를 신청했고, 최근 개혁특구 1호가 됐다.

이 구상의 추진역은 시미즈 마사요시(淸水聖義) 오타시장이다. 그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오타시는 외국인과의 교류가 많다. 외국기업도 있고, 그 가족도 있다. 어린이들의 교육이 문제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타시는 인구가 20만명이 안 되는 공업도시로 외국인 기술자가 많다. 시미즈 시장은 말한다. "국제회의에서 일본인은 영어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리더가 될 수 없다. 다른 지역에 없는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언어 장벽으로 세계표준을 만들 수 없다. 기업의 경영자와 기술자는 그 비애를 통감하고 있다. 세계에 나가서도 자신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을 육성하고 싶다."

현재 일본의 영어교육으로 그렇게 될지 의심스럽다. 주입식 수험 영어, 의사소통 경시의 수업 방법…. "일본의 토플 평균점수는 아시아에서 북한을 웃도는 참담한 상태다. 문부과학성도 이래서는 안 된다고 반성하고 있지만 학교 현장에 가면 바뀌지 않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오타시의 계획은 초등학교 각 반에 일본인과 외국인 교사 2명을 두고 한 학급을 30명으로 하는 것이다. 학교는 기업 등의 출자금 1억엔으로 법인화한다. 입학금은 약 20만엔. 수업료는 월 5만엔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이곳 군마현 출신의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사망) 전 총리가 발족시킨 '21세기 일본의 구상' 간담회가 영어 제2공용어론을 제언한 것은 3년반 전이었다.

"영어는 단순히 외국어가 아니라 국제공통어다. 국제무대에서 정보를 입수하고, 의견을 표명하고, 거래를 하고, 공동작업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도구다. 영어를 체득하는 것은 곧 세계를 알고, 세계에 접근하는 가장 기본적인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이는 외국어 교육 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전략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간담회 보고서)

글로벌 시대에 영어를 구사할 수 없는 사회는 세계에서 뒤처지게 된다. 그래서 일본어를 제1공용어, 영어를 제2공용어로 자리매김하자. 게다가 일본은 장래에 다민족 국가로 될 수밖에 없고 이를 목표로 내걸어야 한다. 이때 영어(이에 준해 중국어와 한국어)를 제2공용어로 하면 외국인 프로페셔널은 일본에서 일하기 쉽게 될 것이다.

그러자 영어 공용어론 때리기가 일어났다. 일본인의 뇌수까지 미국화할 것인가라는 감정적 비판과 영어 등을 유통시키면 일본어가 뒷전으로 밀려나고 만다는 언어 방위론까지 분출했다. 이어서 일본어 예찬 붐이 일었다.

일본어 붐은 일본에 깊어지고 있는 아이덴티티 정치의 또 하나의 발현이다. 북한에 대한 납치 원한,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쇼와(昭和)의 날' 제정 등과 더불어 '닫힌 순수한 일본'으로의 회귀 운동이 숨어 있다. 그러나 오타시의 실험은 '열린 상호의존적 일본'에 대한 희구가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준다.

오타시가 신설한 학교가 뿌린 씨앗이 꽃피는 것은 10년, 20년 후가 될 것이다. 이것이 전국으로 퍼지는 것은 그로부터 다시 10년, 20년이 걸릴 것이 틀림없다.

이 시도는 실질적인 영어 제2공용어를 위한 움직임이다. 이 운동은 중앙과 위로부터가 아니라 지방과 밑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잃어버린 10년'을 보낸 일본에서 겨우 뭔가가 바뀌기 시작했다는 예감이 든다.

후나바시 요이치 日 아시히 신문 대기자
정리=오영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