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핵 해결에 중국 역할 기대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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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핵 프로그램의 우선 폐기냐, 아니면 선(先) 체제보장이냐를 놓고 치열한 기싸움을 벌인 채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는 것조차 거부했던 북한과 미국이, 중국의 중재를 받아들여 조만간 대화를 재개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21일 "북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입장을 밝혔고,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도 "3자회담이 수주일 내에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도 "회담 성사에 대해 희망적으로 생각한다"고 언급했으며, 한국의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도 "마지막 조율단계"라는 입장을 밝혔다.

다자대화의 성사 가능성에 대한 이러한 언급들은 최근 러시아.북한.미국을 순방한 중국의 대북 특사 다이빙궈(戴秉國)의 중재노력 이후에 나온 것으로 북한 핵 위기의 평화적 해결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북돋우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중국의 중재외교를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과 미국을 협상 테이블에 끌어낸 데 대해서만 만족해서는 안 되며 앞으로의 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만 한다.

사실 지난해 10월 이후 격화된 북한 핵 위기의 원인 중 하나는 아시아의 지역대국인 중국이 국제사회의 위상에 걸맞은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채 미국과 북한의 버티기 싸움을 방치한 요인도 있다.

중국은 북한의 실질적 후원국일 뿐 아니라 아시아 질서를 결정하는 핵심적 국가다. 이런 중국이 아시아와 세계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지역적 위기에 대해 평화적 해법의 원칙과 위상에 걸맞은 중재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은 시대적 책무이기도 하다.

북한과 미국도 평화적 해법의 가능성을 깨뜨리지 말고 더욱 빠른 속도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 북한은 핵 개발 프로그램을 완전히 포기한다는 의사를 확실히 표명해야 한다.

북한의 안전보장은 핵을 가짐으로써가 아니라 핵를 포기하는 데 있다. 미국도 북한에 무조건의 항복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협상 테이블로 나올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