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파원J] 女 마라톤 쌍둥이만 7명…北 쌍둥이의 성적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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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 소식을 전하는 톡파원J 김지한입니다.

지난 15일 여자 마라톤이 열린 리우 삼보드로무를 다녀왔습니다. 전날까지 한국 양궁의 쾌거 기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삼보도르무는 여자 마라톤 경기장으로 변해 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더군요. 레이스에선 케냐의 제미마 숨공(31)이 2시간24분4초로 우승하며 조국에 첫 금메달을 안겼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우승자 이상으로 많은 관심을 받은 게 있었습니다. 바로 쌍둥이들의 출전이었습니다. 이날 레이스에는 올림픽 최초로 세쌍둥이가 한 종목에 나란히 출전한 에스토니아를 비롯해 독일과 북한 쌍둥이 자매도 출전해 관심을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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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종목에 출전한 쌍둥이들은 많은 취재진들에게 관심을 받았다. 에스토니아의 세쌍둥이 자매. 김지한 기자

특히 북한의 김혜성-김혜경 자매는 '쌍둥이답게' 함께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나란히 2시간28분36초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비디오 판독 결과는 언니 김혜성이 동생 혜경보다 다소 앞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김혜성이 10위, 혜경이 11위에 오르면서 톱10급의 좋은 성적을 냈습니다.

톡파원J는 인터뷰를 하지 않은 북한 쌍둥이를 제외하고 에스토니아의 레일라-리나-릴리 루이크(Luik) 세 쌍둥이 자매(이상 31)와 독일의 안나-리사 하너(Hahner) 쌍둥이 자매(이상 27)를 직접 만났습니다.

두 쌍둥이의 질주는 세계적으로도 관심을 모았는데 레이스를 마친 뒤 각 국 취재진의 인터뷰만 1시간 넘게 이어질 정도였습니다. 특히 루이크 세 쌍둥이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았습니다. 올림픽에선 처음 있는 세쌍둥이의 출전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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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마라톤에 출전한 에스토니아의 레일라-리나-릴리 루이크(Luik) 세 쌍둥이 자매(31). 김지한 기자

결과는 1등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루이크 자매 중에선 릴리가 97위(2시간48분29초), 레일라가 114위(2시간54분38초)에 올랐습니다. 둘째 리나는 레이스 도중 포기했습니다. 하너 자매는 안나가 81위, 리사가 82위로 연달아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에 관계없이 이들은 언니, 동생이 들어올 때마다 부둥켜안고 감격해했습니다.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 함께 출전하고 완주해 그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등번호가 없었다면 심판들이 누가 누구인지 판정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로 두 쌍둥이 자매는 얼굴 생김새가 모두 같은 일란성 쌍둥이였습니다. 이들이 함께 마라톤을 뛰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세 쌍둥이 자매 중 첫째인 레일라는 "둘째 리나의 권유로 6년 전 함께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원래 이들은 마라톤을 하기 전에도 전문 댄서로 나란히 활동했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모두 활동적이고 함께 노는 걸 좋아했다"던 루이크 자매였지만 마라톤까지 함께 하게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축구와 주짓수를 했다는 하너 자매도 18세부터 학교 교사의 권유로 함께 마라톤을 시작했고, 독일 마인츠에서 교육학 공부를 하면서 선수 생활을 병행하고 있었습니다.

올림픽에 형제자매가 함께 나가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일 것입니다. 루이크 자매 중 막내인 릴리는 "마라톤을 함께 하면서 올림픽에도 다 같이 나가보는 건 어떨까 하고 고민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설렜는데 올림픽 기준 기록을 모두 통과했을 때 느낀 감정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들은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마라톤 강국 케냐에서도 훈련했을 정도로 야심차게 준비했습니다. 하너 자매도 자신들을 가르친 지도자의 도움을 받으면서 올림픽 준비에 매진했습니다. 두 자매 모두 '트리오 투 리우(trio to Rio)' '하너 트윈스(Hahner twins)'라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만들어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을 일반 팬들과 공유해 인기를 모았습니다.

리우 올림픽 여자 마라톤 경기가 열린 15일 당일 30도 안팎의 무더운 날씨 속에 경기가 열려 예상보다는 저조한 기록을 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래도 힘든 순간마다 서로 도우며 함께 달렸습니다. 루이크 자매는 '밀어(Push)!'를 서로 외쳤고, 하너 자매는 '힘내(Come on)!'를 서로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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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마라톤에 출전한 독일의 안나-리사 하너(Hahner 27) 쌍둥이 자매. 김지한 기자

리사는 "언니가 함께 옆에서 뛰는데 중간에 포기하면 어떨까 하고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도 연습한 만큼 뛰자고 했고, 끝까지 뛰려고 힘썼다"고 했습니다. 안나는 "여기는 올림픽이다. 동생이 같이 뛰는데 마치 꿈을 꾸고 있는 순간 같았다. 앞으로도 결코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다"며 가슴벅찬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두 쌍둥이는 북한 쌍둥이에게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특히 안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우리 말고 또 있다니 신기하다. 어디 있는가? 사진 한 번 같이 찍고 싶다"며 톡파원J에게 묻기도 했습니다. 에스토니아 쌍둥이들은 "쌍둥이 마라톤이 열렸다면 북한이 세계 챔피언이 됐을 것"이라며 흥미롭게 빗댔습니다. 그러나 북한 쌍둥이 자매는 레이스를 마친 뒤 곧바로 조용히 경기장을 떠났습니다. 모든 쌍둥이들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레이스를 마친 쌍둥이 선수들은 더 멋진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레일라는 "셋이 함께 뭉치면 누구보다 더 강한 에너지를 낸다. 올림픽에도 단체전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면서 "4년 뒤 도쿄에도 함께 가야하지 않겠니?"라며 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안나는 "에스토니아 세쌍둥이와 더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자매도 더 노력하겠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리우 취재팀=윤호진ㆍ박린ㆍ김지한ㆍ김원 중앙일보 기자, 피주영 일간스포츠 기자, 이지연 JTBC골프 기자, 김기연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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