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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영 회고록 「실패한 도전」2부 <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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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다시 청와대와 공화당 사이의 문제-이후락 비서실장의 퇴진 압력으로 돌아가자. 청와대 비서실장의 교체문제는 특정인의 거취문제로 보면 작은 문제다. 그러나 그 무렵 이 문제는 한사람의 거취문제를 훨씬 넘어서 있었다.
6·3계엄사태 무렵은 제3공화국이 통치질서를 만들어가던 시기였다. 이후락 실장의 역할과 관련한 견해차이는 작게는 집권세력의 통치중심의 문제였고 크게는 제3공화국 정치패턴의 문제였다.
공화당에선 정당이 중심이 되는 통치질서를 추구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비서실의 역할을 사무기능에 제한해 두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한 듯 했다.
정구영씨는 그런 시각에서 이 문제에 매달렸고 끝내 이 문제에서 밀리고 만데다 야당도 포함한 정당권의 무정견한 자세 탓에 민주질서를 만들어갈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이제 그의 회고로 옮아가자.
대통령은 이 실장 퇴진 요구를 첫날엔 귀담아 듣는 듯 했어. 그런데 하루 이틀이 지나도 변화가 없어. 그래서 다시 청와대로 갔었어요. 다시 얘기를 했어. 아주 집요하게….이런 얘기도 했어.
-청와대 비서실에서 정치자금을 맡게되면 그것은 대통령이 직접 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세상사람은 결코 구분해 생각하지 않습니다. 각하는 모르시고 비서실장이 하지만 재무·상공·농림장관에게 비서실장이 쪽지 한 장 보내면 모두들 각하의 명령으로 알아 전전긍긍하고 소금섬을 물로 끌고 가라 해도 끌고 들어가는 시늉을 할 형편이 아닙니까.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분부를 들어 기계적으로 이를 전달하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내가 대통령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중국의 역사를 보더라도 환관정치가 성공한 예가 없습니다. 한나라 때를 보든지 우리 나라 조선조를 봐도 그렇습니다. 불과 60∼70년 밖에 안됐습니다만 고종황제 옆에 강석호·나세환 이라는 두 사람을 별입시라 했습니다. 대신들은 임금 앞에 자주 나가지를 못하는데 내시는 수시로 임금 앞에 나갈 수 있었어요. 원래 내시가 임금 앞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은 대궐 안의 여자와 마찬가지니까 심부름꾼으로서 들어와 심부름을 하랴, 임금이 담배를 피우려 하실 때 담배를 가져오고, 어디를 가실 때 누구에게 무엇을 시키라고 하면 이를 전달하고, 이런 역할인데….
임금은 늘 뵐 수 있는 기회를 이용해 경상감사는 아무개를 시켰으면 좋겠습니다, 아무개가 훌륭합니다, 전라감사는 누구가 좋습니다, 어디 군수는 이렇게 해야 좋습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황제가 그것을 믿고 일 처리를 하신 때가 있어요. 그래 이걸 나중에 별입시라고 했지요. 국무위원 처음에는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이고 나중에는 의정부대신·참정부 대신 이라고 했는데 요새말로 이들이 국무위원이지요. 이런 국무위원들이 황제 앞에 나가서 정책문제를 논의하고 인사문제를 처리해야 하는데 내시들한테 밀려 황제가 내시들 말을 듣고 일을 해놓고 보니까 정작 국무위원들의 말은 의미가 없어요. 그래 가지고 소와 별입시 정책이란 말이 나왔습니다. 고종황제가 말년에 매관매직이라는 비난을 받고 오명을 쓴 것도 내시들 농간에서 나온 것입니다. 중국역사를 보든지 우리 나라의 고려나 조선의 역사를 보더라도 환관정치는 백해무익 입니다. 그 당장은 달콤하고 그럴 듯 하지만 지내놓고 보면 모든 범폐가 거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의 비서실은 환관과는 다르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크게 다를 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3공화국 출발초에 대통령께서 환관정치를 해서 되겠습니까.
-비서실장에 대해 말들이 많고 부작용이 있다면 시정해야겠지요. 선생님 말대로 교체를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을 좀 주십시오.
대통령이 이렇게 말하기에 감격합니다, 대답을 하고 나왔어.
이런 대답을 하고 나왔는데 1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고 20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3주일만에 다시 들어갔어요.
비서실장 문제는 어떻게 합니까 했더니 잠자코 있어요.
요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반드시 비서실장을 바꾸어야 합니다. 각하가 일일이 명령해서 쪽지가 날아가는지, 비서실장이 맘대로 하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어떤 것이 사실인지는 모르나 항간에선 내각은 청와대 비서실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대통령 책임제라 해도 국무위원을 통해서 각하의 정책을 실현해야지 비서실장을 통해서 각하의 정책을 실천하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민주국가에서 국무위원은 로보트고 비서실장을 통해서 친정을 한다면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특수한 양상이 됩니다.
내가 대통령한테 독재라는 용어는 못 썼어요. 그건 좀 심한 표현 같고 대충 이 정도로만 말해도 알아들을 분이니까….그랬더니 대통령은 그렇게까지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갈지요.
그리곤 잠깐 사이를 두고 대통령이 말해.
-이후락군 그만두면 후임은 누가 좋겠습니까.
-그거야 대통령께서 고르실 일 아닙니까…. 그렇지만 마땅한 사람이 없어 저더러 추천하라면 하겠습니다.
-누굽니까.
-서인석군은 어떻겠습니까. 제가 근2년간 접촉해 보니까 젊은 사람이지만 상당한 식견이 있고 여러 면에서 유능하다고 봤습니다.
-그 사람은 국회의원인데 의원직을 사임하고 비서실장을 할까요.
-대통령께서 나라를 위하시는 입장에서 권유를 하시면 그도 의원직을 내놓고 기꺼이 소임을 맡을 것입니다. 저도 그 일에 협력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며칠 여유를 주십시오.
그래 나는 이 문제로 각하께 무례한 점은 이해해 주십시오, 그러고 나왔어. 홀가분한 마음으로….물론 그때 그 일만 한 건 아니야.
6·3계엄사태 때니까 우선 시급한 문제가 정국을 안정시켜 계엄령을 해제하는 일이야. 여·야간에 대화를 해야하는데 그러자면 정부·여당으로서 방침이 서야 하거든. 대통령은 계엄 해제 후에 다시 사회혼란이 오고 또 계엄선포를 하는 악순환이 와서는 안되니 사회혼란을 막을 수 있는 보장입법을 해야겠다는 의견이야.
정부 쪽에서 내놓은 것이 학원과 언론에 대한 규제야. 언론관계로는 언론윤리 위원회 법안 제정계획이 제시되어 청와대에서 정부·여당간에 회의를 했어.
나는 당시 언론규제는 헌법에 저촉이 된다는 견해를 갖고 있었지. 언론이라는 게 모든 자유의 기본이지 않는가. 그래 정부·여당 연석회의에서도 나는 언론이라는 기본적 자유권을 법으로 제한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법적인 배경 설명을 했어요. 백남억·민관식 등도 나와 기본적으로는 의견이 같애. 그랬는데 국방관계자들은 의견이 달라.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민기식 군이지. 그가 계엄사령관이고 김성은 군이 국방부장관이야. 이들은 언론윤리 위원회법 등 보장입법을 강력히 주장해. 이들은 강하게 주장하고 다른 각료들은 발언이 없고…. 그때 여러 차례 회의를 했는데 당 쪽의 백남억 군이나 민관식 군마저도 자기 의견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아. 딱 부러지게 반대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인 인상이야. 여러 차례 얘기해야 내 의견은 나 혼자 뿐이고 규제입법을 해야한다는 주장이 회의를 제압하는 분위기야. 인상적인 것은 각료 중에 이수영씨, 아마 그때 문공장관이지. 그분이 규제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로 나와 같은 입장이야. 그러나 그이도 한번 발언하고 돌아앉더군. 반대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헌법에 위배되지 않느냐 하는 취지의 발언이었던 것으로 내가 기억해.
어쨌든 다수 의견에 따라 규제입법은 하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고 다만 헌법에 저촉되는 조항은 없도록 신중한 검토를 거쳐 법안을 만들기로 됐었어. 그 일을 하는데 힘이 들어 정부원안을 받아 가지고 그 중에서 위헌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는 조항은 수정하는 건데 힘이 들어. 한 쪽에선 여·야 정치협상을 하고 또 한쪽에선 보장입법을 준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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