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하반기 경기 ‘우중충’…매출 늘어도 이익은 줄 듯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국내 매출액 기준 상위 30개 상장사들은 올 상반기(33조9095억원)보다 하반기에 영업이익이 오히려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중앙일보가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12일까지 30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한 결과다. 통상 하반기는 연말 특수로 상반기보다 장사가 잘되는데 이를 거스르는 전망이다. 설문 결과 30대 기업들은 하반기 영업 이익을 33조5972억원으로 예상했다. 상반기보다 3123억원 줄어든 것이다.

전형적 불황형 성장 전망 지배적
급속히 오른 환율이 가장 큰 악재
중국 성장 둔화, 미국 대선도 변수
“어려움 많아도 채용 규모 유지”

오정근 건국대 경제학과 특임교수는 “기업들이 스스로 올해 상반기보다 하반기가 좋지 않은 상고하저(上高下低)를 기록할 확률이 높다고 전망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 이미지

본지 설문에 응답한 이들은 자사의 하반기 매출(470조6315억)이 상반기(445조1103억)보다 늘어난다고 봤다. 매출을 늘어나지만 영업이익은 오히려 줄어든다는 답변이었다. 물건을 많이 팔아도 호주머니는 홀쭉해지는 전형적인 ‘불황형 성장’을 내다본 것이다.

이유는 하반기 대내·외 상황이 모두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30대 기업들이 뽑은 ‘하반기 실적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1위’는 환율(18.8%)이었다. 하반기 들어 원·달러 환율은 13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진입했다. 지난 10일에는 심리적 마지노선인 1100원선까지 장중 붕괴되기도 했다. 이상화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예상보다 원·달러 환율 변동폭이 가파르다”며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돌발 사건’ 수준으로 볼 수 있는 악재”라고 분석했다.

기사 이미지

김선태 KB금융경영연구소 거시분석실장은 “상반기 국내 기업은 환율 상승 → 원가 하락 효과 → 가격 경쟁력 확보 → 수익성 증가 → 실적 호전이라는 이른바 ‘환율 효과’를 누렸다. 하지만 하반기 환율 하락으로 국내 기업의 밑천(경쟁력)이 드러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부요인 덕에 근근이 버티던 실적이 하반기엔 본격 악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환율 외에 중국 변수도 크다. 중국 매출 비중이 큰 기업들은 중국 경제(전체중 14.9%가 답변)를 시한폭탄으로 본다. 설문에 답한 한 제조 기업은 “국제통화기금(IMF)의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을 예측치(6.6%)가 예상보다 낮게 발표되면서 하반기 실적 목표도 다소 내려 잡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 대선과 보호무역주의(11.9%)도 걱정거리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트럼프가 보호무역 강화를 공식적으로 천명한데다가, 미국 정부내에서도 보호무역주의 기류가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설문에 응한 유화업계 한 기업은 “대미 수출 비중은 작지만, 미국이 보호무역을 강화하면 다른 국가로 보호무역 트렌드가 확산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일부 수출 기업은 최근 미국 상무부가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포스코·현대제철 사례를 거론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한국산 철강에 관세가 최종적으로 부과된다면, 관계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고객사를 제외한 미국 물량을 축소할 수밖에 없고 실적 타격도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렇게 대외적 수출 환경이 불안정한 가운데 내수 기업들은 국내 소비 부진(13.9%)을 걱정거리로 꼽았다. 한 유통 기업은 “지난해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등 내수 침체 원인이 명확했지만, 올해는 딱히 큰 원인이 없는데도 소비심리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한국판 ‘블랙 프라이데이’ 등 일회성 행사를 마련해 내수에 ‘심폐소생’을 하고 있지만, 언제 내수가 본격적으로 살아날 지 미지수로 보고 하반기 긴축 기조를 확정했다”고 말했다.

하반기 어려움이 예상되는 가운데서도 30대 기업들은 채용 규모를 크게 줄이진 않을 전망이다. 30대 기업 중 절반 정도(46.7%)가 하반기 채용 규모를 상반기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답했다.

오정근 교수는 “하반기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이윤이 정체되면 우리나라 올해 경제성장률은 2%대 초반까지 하락할 수 있다. 이는 제조업 가동률 하락 → 부실 기업 증가 → 신규 투자 감소 → 고용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오 교수는 “기업은 기술 혁신 등 근본적인 체질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정부는 환율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설문조사 기업 명단(2015년 기준 매출 30대 기업)=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LG전자, LG디스플레이, 포스코, 현대중공업, 현대모비스, SK하이닉스, SK네트웍스, S-오일, LG화학,KT, 포스코대우,롯데쇼핑, 현대제철, 대우조선해양, SK텔레콤, 현대글로비스, 대한항공, 이마트, LG유플러스, 현대건설, 대우건설, 삼성중공업, GS건설, 삼성물산, 롯데케미칼, 대림산업, 효성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