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담그기도 주부 손을 떠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한국 식생활 문화를 대표하는 된장·고추장 담그기에 다양한 변화가 일고 있다. 「집안의 음식 맛을 좌우하는 된장·고추장은 마땅히 주부가 담가야 한다」는 명제는 이미 옛말. 벌써부터 여성단체들의 메주 바자가 문전성시를 이루더니 이젠 「장 전문 파출부」 「장의 주문생산」 「아파트촌의 집단 장 담그기 의뢰」 「즉석 분말 고추장」 등이 등장, 서울의 장 담그기 풍속을 바꾸어가고 있다.
햇콩으로 메주를 쑨 후 건조·발효시키는 3∼4개월의 일손을 덜어주기 위해 생긴 메주바자는 서울 YWCA가 15년 전 처음 시도했고 지금은 대한 주부클럽연합회 전국 주부교실 중앙회 등이 장 철인 2∼3월께 백화점 지하 식품부 등에서 실시하고 있다.
서울Y의 경우 미리 예약을 받는데 주문량이 보통 2천 말을 웃돈다. 서울Y는 『청양에 개척교회를 세우면서 그곳 주민들의 농한기 수입도 올려주고 주부들의 일손을 덜기 위해 이를 시도했다.』고 정숙희 간사(40)는 밝힌다.
대한주부클럽연합회는 주부들이 주문하면 아예 자체 내 생활관에서 된장과 고추장을 기호에 맞게 담가준다. 된장은 소두1말에 1만원, 찹쌀고추장은 1kg에 1만4천원을 받는다.
메주바자를 통해 잘 뜬 메주를 사다 집에서 담그길 원하는 주부들에겐 장 전문 파출부가 큰 인기.
대한주부클럽연합회 등 여성단체 등이 파견하는 이 파출부는 반나절에 된장·고추장을 담가주고 1만원을 받고 있다.
서울압구정동 한양아파트에 사는 주부 김모씨(45)는 잔치를 치른 후 『된장 맛이 기막히니 같이 나눠먹자』는 이웃 주부들의 성화(?)에 매년 40∼50가구 분의 된장·고추장을 경상도 언니 집에 1년 전쯤 집단 주문해 실어오고 있다. 같은 동에 사는 아파트주민들의 70%가 같은 된장·고추장을 먹고있는 셈.
한국식생활개발연구회 등은 매년 장 담그는 철이면 빗발치는 문의전화를 받고 있으며「손쉽고 맛있는 장 담그기 강좌」에 매우 분주하다.
롯데쇼핑의 경우 S 및 D식품의 진공포장 고추장 및 된장을 팔고 있는데 된장의 종류는 막장·흰 된장·흑 된장·양념쌈장·가래된장 등 다섯 가지나 된다.
판매담당 민윤기씨 (28)는 『하루평균 90∼1백명의 주부가 다녀가며 매년 15∼20%씩 매출이 신장되고 있다』고 밝힌다.
20년간의 연구 끝에 지난 3윌말 「즉석 분말고추장의 제조방법」으로 특허(제20872)를 받은 윤일섭박사 (경희대 명예교수)는 『맛과 영양을 최대한 살리고 장기보관이 가능하며 물만 타면 3분만에 맛있는 고추장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며 『한국 식생활문화에 전기가 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한다. <고혜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