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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학생 칼럼

청춘예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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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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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헌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매년 여름, 일본 프로야구팀 한신 타이거스는 2주간 홈구장을 떠나 ‘지옥의 원정’을 떠난다. ‘고시엔’이라고 불리는 일본의 전국 고교야구대회 때문이다. ‘고시엔’은 본래 오사카 근방에 위치한 한신의 홈구장 이름이지만 전국 고교야구대회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고시엔 무대를 밟는 것은 일본에서 야구를 하는 모든 학생의 꿈이다. 전국 4000여 개 고교의 선수가 이 무대에 서기 위해 달린다.

국내에도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아다치 미쓰루의 만화 ‘H2’ ‘터치’는 고시엔과 야구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일본에서 그의 만화가 큰 인기를 얻는 이유는 단순히 인기 스포츠를 다루고 있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고시엔에서 패배한 팀은 구장의 흙을 담아 가는 전통이 있다. 이 흙은 열정, 불안, 실패, 우정, 짝사랑 등이 뒤섞인 청춘이라는 시간과 감정의 상징이다. 한신 타이거스 선수들은 한참 어린 후배들을 위해 자신의 무대를 기꺼이 청춘들에게 내준다.

반면 우리나라의 청춘들은 스포트라이트 속에 서야 할 자신의 무대를 오히려 기성세대에게 내주었다. ‘청춘’이라는 단어도 함께 넘겨주었다. 명사 강연과 성공담과 같은 타인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위안을 찾는다. 청춘에 대한 기성세대의 시각과 문장을 공유할 뿐 스스로의 문화와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텔레비전의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풍자되는 현실에 힘껏 웃고 분노하는 것에 그친다. 자조적인 어휘들이 젊은 세대의 문화를 대변한다. 소중하기만 한 ‘청춘’이라는 말도 그렇게 빛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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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용석]

2000년을 전후해 캠퍼스에는 대기업의 이름을 딴 건물들이 줄지어 세워졌다. 그렇게 청춘과 신자유주의의 동거가 시작됐다. 한집 살림의 신경전 속에 ‘보람찬’ 대학 생활은 스펙 쌓기로 치환됐다. 온라인에는 학년별로 대외활동, 학점, 토익 등의 단계가 정형화돼 공유될 정도다. 더불어 서류전형에서 더 유리한 대기업의 대외활동도 논의된다. 청춘은 캠퍼스라는 무대마저 내어주었다.

입에 발린 희망만을 이야기하기에 분명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렇다고 무대의 주인이 되기를 스스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조명 밖, 어둠 속에서 박수 치는 일은 부질없다. 2005년 제87회 고시엔 대회의 캐치프레이즈는 ‘너에게 보여주고 싶은 여름이 있다’였다. 스스로의 무대를 찾을 필요가 있다. 8월의 태양 아래 고시엔의 마운드에서 땀을 흘리며 공을 던지는 투수처럼. 껍데기만 남은 청춘의 속을 채워야 한다. 스포트라이트 안으로 걸어 들어가 주인공이 되자. 세상을 향해 외치지도 않고서 세상이 바뀌길 기다릴 순 없는 일이다.

이도헌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