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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기자의 교육카페] “왜 이렇게 게으르니” 대신 “30분 일찍 일어나자”…비폭력대화법 써보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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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얼마 전 한 지인이 중학생인 아들과 대화하는 게 어렵다며 속마음을 털어놨습니다. 못마땅한 아들의 태도에 ‘욱’ 하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언성을 높이게 되는 것이 더 힘들다고 했습니다. 아들과 말다툼을 하다 보면 나중엔 왜 화났는지 이유는 잊어버리고 감정만 격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합니다. 그는 “감정싸움으로 번질까봐 말을 건네는 것조차 조심스럽다”며 속상해했습니다.

한창 예민한 시기인 사춘기 자녀와의 대화는 모든 부모에게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아니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소통 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죠. 하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은 물론 성인인 부모에게도 올바른 소통법을 배우는 것은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일입니다.

소통 능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2개국이 7년간 공동 연구해 발표한 21세기에 필요한 핵심 역량 세 가지(DeSeCo 프로젝트, 2003년) 중 하나일 만큼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갈등 없이 소통을 잘 이끌어 나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좋은 소통은 감정을 잘 다스리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한 자녀에 대한 사교육비를 매달 300만원 가까이 지출했던 A씨는 자녀에 대한 집착이 강했습니다. 과한 관심은 신경질적 대화로 이어지기 십상이었죠. 매일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고, 일이 어긋나면 소리 지르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매일 아이에게 짜증만 내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주변의 권유로 비폭력대화법(NVC)을 배우기 시작한 A씨는 감정과 사실을 구분하는 일부터 했습니다. 비폭력대화는 미움·편견·공격성 등 대화 시 발생하는 폭력성을 줄이기 위해 미국의 마셜 로젠버그 박사가 고안한 소통법입니다. 예를 들어 늦잠 잔 자녀에게 “넌 왜 이렇게 게으르냐”며 자의적 판단을 내리기보다 “지금이 8시인데 학교에 늦겠다”고 사실만 말하는 게 첫 단계입니다.

두 번째는 화가 난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표현하는 게 아니라 자기 심리 상태를 말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PC방을 가는 자녀에게 소리 지르고 짜증낼 게 아니라 “엄마가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 네가 엄마의 말을 계속 무시하는 것 같아 마음이 상한다”며 차분히 이야기하는 거죠.

세 번째는 자신의 요구사항을 자녀에게 정중히 부탁하는 겁니다. “30분만 일찍 일어나자” “PC방 가는 것을 줄이자”고 자신의 주장을 합리적 근거를 대며 제시하는 거죠. 자녀 입장에선 엄마·아빠도 자신과 똑같이 감정에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사람이고 각자의 욕구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처음엔 비폭력대화가 어색했던 A씨도 몇 달간 반복하자 어느새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눅 들어 있던 자녀는 표정이 밝아졌고 자존감이 높아졌으며 사회성도 커졌습니다. 물론 ‘욱’ 하는 감정을 매번 표현하지 않고 일일이 말로 설명하는 것은 대단한 인내력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상대방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노력이 필요하겠죠. 중요한 것일수록 거저 주어지는 경우가 없기 때문입니다.

윤석만 교육팀장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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