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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2016] “쑨양 소변은 보라색” “호주, 옛 영국 교도소”…동서 도핑 냉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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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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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릴리 킹(왼쪽)이 9일 여자 평영 100m 경기 중 TV 화면에 잡힌 러시아의 율리아 에피모바를 보며 ‘넌 안 돼’라는 뜻으로 검지를 가로젓고 있다. 에피모바는 두 차례 도핑 양성 판정을 받았다. [미국 NBC 방송 캡처]

개막 전부터 불거진 금지약물 논란이 날이 갈수록 증폭되면서 리우 올림픽이 동(東)과 서(西)로 쪼개지고 있다.

약물 전력 중국·러시아 선수 향해
서방 선수들 침묵 않고 직접 공격
펠프스까지 가세 국가 갈등 번져
중국·러시아, 국가 주도 스포츠 육성
개인주의 성향 강한 서구와 시각차

미국·유럽·호주 대 러시아·중국의 대결 양상이다. 양측 선수들의 설전이 국가 간 갈등으로 비화하거나 또 다른 파열음을 낳으면서 스포츠계에 ‘신냉전’ 조짐이 보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10일(한국시간) “종전엔 말하기 난처했거나 침묵으로 넘겼던 일이 이젠 직접적인 대립으로 악화되면서 냉전시대의 오랜 정치적 대결을 따라가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현재 신냉전의 주무대는 수영 경기장, 남자 주인공은 중국의 쑨양(25)과 호주의 맥 호튼(20)이다. 7일 남자 자유형 400m에서 우승한 호튼이 함께 경기한 쑨양을 ‘약물 사기(Drug Cheat)’라고 비난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쑨양은 2014년 금지 약물을 복용해 3개월 출전 정지를 당했다. 쑨양의 팬들은 즉각 호튼의 페이스북 계정에 비난 댓글을 10만 개 넘게 쏟아냈다. 중국 언론들도 ‘호주는 과거 영국의 해외 교도소’ 등의 표현을 써가며 공격에 가세했다. 중국 수영 대표팀은 호튼이 악의적인 표현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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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호주 선수단은 사과를 거부하면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프랑스 수영 선수인 카미유 라코르도 9일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쑨양의 소변은 보라색”이라면서 “수영은 결승전마다 약물 복용 선수가 2~3명씩 있는 스포츠로 변질되는 것 같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호주 민영방송인 채널7 앵커는 쑨양을 두고 ‘스타(stars)’ 대신 ‘중국의 속임수(cheats) 중 하나’라고 말하는 실수 아닌 실수를 했다.

대규모 도핑 스캔들로 100명 넘는 선수가 불참한 러시아도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주로 미국 선수들이 두 차례 도핑 양성이 나온 러시아 여성 선수 율리아 에피모바(24)를 공격하는 양상이다. 9일 여자 평영 100m에서 우승한 릴리 킹(19·미국)은 ‘은메달’ 에피모바를 철저히 무시했다. 이날 준결승을 마치고선 TV에 나온 에피모바를 향해 ‘넌 안 돼’라는 의미로 검지를 가로저었다.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에피모바는 도핑 괴물”이라고 맹비난했다.

이번 대회 3관왕에 오른 미국의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31)도 거들고 나섰다. 그는 “킹이 옳다고 생각한다”며 “도핑 양성 반응이 나온 선수가 버젓이 돌아오는 것은 슬픈 일”이라고 말했다고 영국 데일리메일이 10일 전했다.

수영장 바깥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유럽 선수들은 물론 브라질 관중도 러시아에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 복싱 선수인 에프게니 티슈첸코는 링에서 야유를 받은 뒤 “개인적으로 이런 대우를 받기는 처음이며 실망했다”고 말했다.

여론이 갈수록 악화되자 러시아 측도 반격에 나섰다. 러시아 국영방송 베스티24는 펠프스의 부항 요법을 두고 “다른 물리적 치료보다 근육 회복 효과가 빠르게 나타난다. 이는 금지약물인 멜도니움과 다르지 않다”고 딴지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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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의 치열한 대립 이면엔 올림픽과 스포츠를 보는 ‘시각차’가 숨어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스포츠가 곧 국력’이라는 믿음 속에 가시적인 결과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 미국과 유럽 등에선 상대적으로 경기의 주체를 선수 개인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강준호 서울대 글로벌스포츠매니지먼트 대학원 교수는 “러시아·중국은 사회주의 특성상 국가 주도로 스포츠를 양성했고, 그 과정에서 성과 지상주의로 인해 도핑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경향을 보였다”며 “반도핑을 국제 표준화하는 흐름에서 중·러가 일탈하는 것으로 보이면서 서구의 반발을 사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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