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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황태자가 온다는데|박보균 정치부기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아끼히또」 일본 황태자의 방한 소식은 요즘 거의 일상적으로 접하는 수많은 외국 요인들의 방한과는 달리 결코 범연하지 않는 느낌을 준다.
그의 방한이 전두환 대통령의 방일에 대해 일황을 대리한 답방 형식이라고 하지만, 비참한 식민지 역사의 원초적 책임을 지고있는 일본 황실의 역사상 최초의 한국 상륙이라는 점에서 심상한 심정으로서만 받아들이기 어렵다.
『유인 (히로히또 일황)이 전 대통령에게 사과했듯이 그 아들이 우리 국민 전체에게 사과를 재확인하러 오겠다면 굳이 반대할 생각은 없으나 방한하겠다는 진의가 뭣인지 모르겠다』는 광복회 회장 유석현 옹의 냉담한 반응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실제 많은 국민들은 그가 왜 오며 와서 무슨 말을 할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정부는 식민지 통치에 관한 사과·반성은 히로히또 일황이 전 대통령에게 한 유감 표명으로 끝났다는 공식 입장이지만 최근 일본 언론은 일본 정부가 황태자의 방한 때 행할 사과의 수준 문제를 검토중이라고 전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그 수준을 어떻게 정할는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우리로서는 세계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악랄한 민족 말살 동화 정책의 근원인 일본 황실이 한국에 와서 과거사와 적당히 결별하려 한다면 참기 어려울 것이다.
더우기 그의 방한은 표면상 초점을 어디에 두든 간에 이 지역에서 일본의 정치적 영향력을 부활시키려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이 대 대륙 관계 및 동북아 질서 재편에 본격 참여를 위한 전 단계 정지 작업으로 아시아 국민들의 대 일본 황실관의 개선을 노리는 첫번째 시도로 한국민을 시험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과거사를 명확한 사과나 반성 없이 적당히 회피하려 든다면 그의 방한은 방한의 숨은 의도만 극명하게 표출시킬지도 모른다.
그가 이 땅에 와서 설사 어떤 말을 한다 하더라도 불과 한 세대전의 그 기억을 잊어버리기는 어렵지만, 역사와 양심에 대한 경허한 자세로 유보 없는 솔직한 심정의 토로가 있어야 양국 정부가 강조하는 미래 지향적 관계 발전도, 선린도 그 바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박보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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