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일 관계의 깊이와 폭 넓히자는 것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일본의 「아끼히또」(명인) 황태자의 방한을 한일 양국정부가 공동추진 할 것임을 밝힌 11일 이원경 외무장관의 발언은 지난해 연말부터 비공식적으로 논의해온 이 문제를 본격적 공식현안으로 다루겠다는 표시다.
외국 주요 지도자의 방문을 구체적 일정·의의·형식을 확실히 매듭짓기 전에 중간 구두발표 형식을 통해 공표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이는 일본측의 요청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황실외교의 역사적인 한국상륙을 매스컴의 추측 보도로부터 보호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자는 의도로 중간발표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끼히또」 황태자의 방한은 84년 9월 전두환 대통령의 방일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자연스럽게 논의돼 왔으며, 지난해 연말부터 구체적 문제에 대한 비공식 교섭이 진행돼 왔다는 관계자의 설명이다.
당시 국가원수인 「히로히또」(유인) 일황을 방한 초청했으나 △고령(현 85세) △76년 이후 건강상 이유로 외유를 중지하고 있어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따라서 황태자의 방한은 일황을 대신한 자격으로 추진되는 것이다. 황태자는 76년 일황 대리 자격으로 유고를 방문한바 있으며, 일 황실 법규는 황태자의 국사대행을 규정하고 있다.
「아끼히또」 황태자의 방한은 현재 한일관계에서 차지할 위치가 명확히 제시되고 있지 않으나 일본 황실사상 최초의 공식방문인 만큼 의미심장한 것이다.
황실이 일본 국민들로부터 추앙을 받고 국민적 단합의 구심점인 만큼 83년 1월 「나까소네」 수상의 방한과는 다른 차원에서 중요한 의의가 부각되고 있다.
일본정부가 「아끼히또」 방한에 적극적인 것은 전 대통령·「나까소네」 수상의 상호 방문을 통해 개막된 한일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겠다는 의지의 표시다.
일본황실에 대한 한국 국민의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시켜 양국관계의 깊이와 폭을 더욱 넓히겠다는 것이다.
일황의 사과발언으로 식민지 관계의 과거사가 청산됐다고 평가하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이제 국민 대 국민의 차원으로 양국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한 국민의 대일 황실관 개선이 필수조건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또 아시아에 대한 황실외교의 재개, 일본의 대 대륙관계 및 동북아 질서 재편에 본격 참여를 앞두고 한국에서부터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황태자가 내년 봄 중공방문에 앞서 한국을 찾는 것이 하나의 순서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양국관계 재정립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나까소네」 수상의 의욕의 반영으로도 분석된다.
한국 측으로서도 황태자의 방한을 통해 양국관계를 더욱 확대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황태자가 언젠가는 일황의 자리에 오르게되는 만큼 이번 기회에 황실의 친한 분위기를 일본사회에 확산시켜 보자는 것이다. 일본에서 황실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현안문제 해결을 위한 분위기 조성이라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일 황실의 역사적인 책임이 되고있는 재일 한국인 법적 지위문제·사할린 교포 송환문제가 자연스럽게 거론될 수 있고 일본 국가형성에 있어 한민족이 참여했다는 사실이 또 한번 부각됨으로써 인접국으로서의 한일관계가 다시 한번 두 나라 국민간에 인식될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로서는 일 황태자가 내년 4월로 예정된 중공방문에 앞서 방한토록 하는 것이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황태자가 방한해 또 한번 과거사 반성을 할 것인가가 관심이 되고있으나 일본으로서는 일황의 발언으로 이 문제가 끝났다고 보고 있으며, 한국도 되도록 미래지향적인 측면에서 이 문제에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우리 국민 속에 뿌리깊게 남아있는 일제에 대한 증오심이 그의 방한에서 어떤 여론의 바람으로 일어날지 주목된다.

<박보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