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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인데 A4용지 한 장 길이?…작가 조경란이 추천하는 '장편'집 4권

중앙일보

입력

5권의 장편소설과 6권의 소설집을 펴낸 등단 20년차 소설가인 조경란 작가는 어느 날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짧은 이야기들을 써볼래. 짧지만, 아주 좋은 이야기들. 물론 재미도 있고 말이야”라고 결심했다. 그리고 7개월 남짓 기간 동안 매주 한 편씩 평균 원고지 10매 내외 분량의 아주 짧은 이야기를 썼다. 그중 마음에 안 드는 것 2편을 제외하고 31편을 묶은 것이 이번에 내놓은 신작 『후후후의 숲』이다.

조 작가는 “소설을 읽는 사람을 만나기 힘든 시대가 되어 버렸다. 짧은 글이라면 독자들도 부담 없이 책을 집어 들지 않을까 싶어 가능한 한 짧게 써봤다”고 소개했다.

문학 장르에서 단편 소설보다 짧은 소설을 장편(掌篇)이라고 한다. 한자는 손바닥 장(掌)을 쓴다. 즉 손바닥만 한 크기의 짧은 소설이라는 뜻이다. 서양에선 꽁트라고 부르는데, 단 한 글자의 군더더기도 없이 말끔하게 쓰인 이야기들이다. 재미는 물론이고 뜻밖에 마주치는 삶의 풍경 속에서 감동까지 안겨주는 게 이 짧은 소설의 매력이다.

조경란 작가가 자신의 손바닥 소설에 영향을 준 유명 작가 4명의 책을 추천했다. 가만히 있기도 힘든 요즘같은 여름날에도 ‘독서’가 가능할 만큼 짧고 쉽고 재밌는 책들이다.

조경란 작가가 추천하는 짧은 글의 매력을 알려주는 책 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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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소설』
가와바타 야쓰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문학과지성사
작가는 손바닥 소설을 “내 문학의 표본실”이라고 말한다. 짧은 분량에 함축적이고 완결된 이야기로 인간의 꿈과 이별·사랑·환상 등 거의 모든 이야기를 담아냈다. 내가 손바닥 소설을 알게 된 것도 이 작가 덕분이다. “젊은 시절 시를 쓰는 것 대신 손바닥 소설을 썼다”는 작가의 얘기에, 나 역시 언젠가 꼭 손바닥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내가 쓰는 손바닥 소설의 표본이 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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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원숭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열림원
무리카미 하루키가 젊은 시절에 쓴 책을 매우 좋아한다. ‘소설은 이래야 한다’는 엄숙주의, 완결성에 대한 압박과 편견을 내려놓고 그야말로 펑키하게 써내려간 짧은 글이다. 하루키의 풍부하고 독특한 상상력, 감각적인 문장과 안자이 미즈마루의 일러스트가 탁월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열림원에서 펴낸 책은 절판이 됐고, 문학사상에서 『밤의 거미원숭이』라는 제목으로 새롭게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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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나는 인생』
성석제 지음, 강출판사
책을 펼치면 해학적인 문체에 푹 빠져 낄낄대며 웃다가, 그 안에 담긴 묵직한 주제에 가슴이 울려 울컥해지는 글이다. 손바닥 소설과 사진의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생의 찰나를 찍어내 온 인생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짧은 글 안에 우리 인생의 희로애락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싱싱하고 활력이 넘치는 글이란 어떤 것인지 확인할 수 있는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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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팀 버튼 지음, 임상훈 옮김, 새터
영화감독 팀 버튼이 직접 일러스트를 그리고 글을 썼다. 엽기적이고 섬뜩하지만 귀엽고 미소 짓게 만드는 독특한 감성의 글이 가득하다. 그의 글과 그림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발상의 전환과 알레고리다. 짧은 글을 쓸 때 이 두 가지 기법이 아주 중요한데, 팀 버튼은 전문 작가가 아니면서도 특유의 감성으로 이를 예리하게 포착해냈다. 읽을 때마다 배울 점을 발견하게 된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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