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가 먼저다 1부] 말라가는 일자리… 겉도는 고용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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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단골로 내놓는 실업 대책이 일자리 알선과 직업 훈련, 고용장려금 지급 등이다. 그러나 일자리 자체가 말라가는 상황에선 이런 정책들은 자칫 예산 낭비에 그칠 수 있다.

정부 대책에서 가장 대표적인 게 인턴 취업이다. 서울시는 올해 국가 예산을 지원받아 '고학력자 행정 서포터스제'를 확대 실시하고 있다. 서울시는 현재 전문대 이상 졸업자 3천여명을 뽑아 산하기관과 구청에 배치했다. 이 제도는 고학력 청년 실업자들에게 전공에 맞는 경력을 쌓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생겼다.

그러나 실상은 아르바이트로 봐야 한다. 두 달간 1백50만원을 주고 대부분 문서 복사.교통 관리 등 단순 보조업무를 시키고 있다. 특히 서울시는 이들을 교통단속 업무에 집중 투입하라는 지침까지 내렸다. 그러나 이 바람에 인턴사원들은 결국 취업에 도움이 될 경력도 제대로 쌓지 못한 채 두달 뒤엔 다시 실업자로 돌아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실업대책은 통계상 잡히는 실업자 수를 잠깐 줄여 문제의 심각성만 오히려 가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노동연구원 허재준 연구위원은 "정부가 시행 중인 인턴제는 비생산적인 부문에 사람을 묶어두면서 쉽게 일하고 돈받는 트랩에 빠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참여정부가 지난 3월 장기 경제운용 계획을 짜면서 평생직업능력 개발체제를 구축하겠다고 한 것은 그런대로 방향을 잘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부는 청소년.재직자.퇴직예정.실업자 등 각 고용 단계별로 특화된 일자리 훈련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뒤 실천을 향한 발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4월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할 인력개발 업무를 노동부가 맡도록 지시했다.

노동부가 이 업무를 하려면 기존에 이 일을 해온 교육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노동부와 교육부는 아직 실무 접촉조차 한번 못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대통령 지시가 있었지만 노동부가 이를 먼저 거론하면 부처 이기주의로 비춰질까 조심스럽다"고 밝혔다.

청년 실업은 노동부 혼자 풀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일자리를 제공하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기업인 만큼 기업이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쪽으로 관계 부처들이 머리를 맞대야만 한다.

일본의 경우 지난달 '청년자립 및 도전 플랜'을 내놓으면서 문부과학성.후생노동성.경제산업성.경제재정정책담당 장관이 함께 발표했고, 추진팀도 공동으로 구성키로 했다.

과거 정부들의 일자리 정책을 봐도 숫자놀음식 전시행정으로 그친 경우가 많았다. '국민의 정부'의 '일자리 2백만개 창출'이 대표적 사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신년사에서 "중소.벤처기업.문화.관광산업 등을 육성, 2백만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분야별 세부 추진 계획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후 실제 성과가 어떠했는지는 아무런 얘기가 없다. 청년 실업 문제가 2000년 당시보다 훨씬 심해진 것으로 보면 실패한 숫자 놀음에 불과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일자리 자체가 없는데 직업훈련이나 알선을 늘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정부는 무엇보다 고용 주체인 기업을 키우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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