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안 수용 배경] 재계 "勞에 끌려다닐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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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가 정부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한 배경에는 주5일 근무제를 두고 노조와 힘겨루기를 하면 할수록 손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

금속노조가 산별 교섭에서 '임금 삭감없는 주5일 근무제'에 합의한 상태에서 개별 기업이 노조와 협상을 벌일 경우 노조의 힘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즉 금속노조의 주5일 근무제 합의안이 전국의 각 단위 사업장으로 연쇄 확산할 것을 우려했다. 재계로선 차선책으로 정부의 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사실 재계는 현 정부 출범 초기부터 주5일 근무제 실시가 임.단협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자 적잖이 당황했다.

재계는 지난해 노사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정부가 단독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한데다 설마 노조가 법도 없는 상태에서 주5일 근무제를 쟁점으로 삼겠느냐는 안이한 생각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노조가 정부의 법안을 수정하려 들 것으로 예상했지, 개별 사업장에서 주5일 근무를 불쑥 도입하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조가 전국의 개별 사업장에서 이 문제를 들고 나왔고 결국 금속노조가 제일 먼저 산별 교섭을 통해 통과시켰다. 더욱이 금속노조 산하의 기업들이 중소기업인 점을 감안할 때 빠르게 확산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이 때문에 재계 내부에서는 "지난해 경영자총협회가 노사정위에서 주5일 근무제 합의안을 받아들여야 했던 것 아니냐"는 자성론까지 나왔다.

결국 재계는 6월 16일 한국자동차공업협회가 주5일 근무제 조기 입법을 촉구한데 이어 이달 1일에는 전경련과 대한상공회의소가 공식적으로 정부안의 입법을 촉구했었다.

정부도 이를 내심 반기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주5일 근무에 관심을 가져온 정부로서는 손대지 않고 코푸는 격이 됐다.

정부는 만약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주5일 근무제를 반대하며 총파업에 들어갈 경우 이를 불법파업으로 규정해 강력 대처한다는 내부 방침까지 정해 놓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분위기가 무르익은 만큼 7월 임시국회 회기 중에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부 안대로 주5일 근무제가 국회를 통과하기 위해선 두가지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주5일 근무로 경영에 애로를 겪을 중소기업 등 재계 일부가 전경련의 방침을 수용할지와 노동계의 반발이다.

전경련의 정부안 수용 방침에 대해 경총이나 대한상공회의소 측은 대체로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인정하며 찬성하고 있다. 반면 중소기협중앙회 측은 "정부안의 수용 여부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며 경영계 의사를 반영할 의사소통 창구 마련을 요구했다.

문제는 국회다.

여야 원내총무는 주5일 근무제 도입을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양대 노총이 주5일 근무제 입법안이 통과될 경우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공언하고 있어 국회의원들은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정치권의 행보가 주목된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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