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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 외제차 질주 사고 경위 의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31일 오후 부산 해운대 도심에서 발생한 외제차 질주 사고와 관련해 사고 경위를 두고 의문이 커지고 있다. 애초 가해 운전자 김모(53)씨가 뇌전증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사고 원인이 질환에 초점이 맞춰지는 듯했다. 그러나 경찰이 사고 직전 김씨가 몰던 푸조 차량이 다른 차량을 들이받은 뒤 뺑소니 치는 영상을 확보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정신을 잃었다'는 김씨의 진술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사고의 재구성

경찰이 입수한 블랙박스 영상에는 김씨가 해운대구 좌1동 해운대문화회관 네거리에서 사고 직전 1차 차량 접촉 사고 장면이 담겨 있다. 1분짜리 이 영상과 앞서 경찰이 사고 당시 확보한 또 다른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사고 과정을 재구성해봤다.

우선 사고 직전 블랙박스 영상에는 김씨가 몰던 푸조 차량이 해운대구 좌4동 롯데2차아파트와 양운고등학교 사이 해운대문화회관 방향 편도 3차로 가운데 2차로를 주행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지점은 사고가 난 곳에서 750m가량 떨어진 곳이다. 푸조 차량이 같은 차로에서 앞서 달리던 엑센트 차량을 뒤에서 추돌했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엑센트 차량이 순간 덜컹거렸다.

이후 엑센트 차량은 비상등을 켜고 사고 수습을 위해 3차로에 정차했다. 하지만 푸조 차량은 20여m를 2차로에서 계속 주행하다가 엑센트 차량을 앞질러 3차로로 옮기고 계속 주행했다. 이 진로 방향의 다른 차량들은 신호 대기에 모두 멈춰선 상태였다. 그런데도 푸조 차량은 3차로 가장자리까지 붙어 2차로와 3차로 사이에서 서 있던 차량 옆으로 비껴 갔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네거리를 지나던 시내버스와 충돌 직전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갔다. 블랙박스 영상 속의 남녀는 “음주다. 음주다. 낮술 뭇따(먹었다). 낮술 뭇따”며 푸조 차량의 음주운전을 의심했다.

그리고 푸조 차량은 600여m를 더 달리다가 해운대문화회관 네거리 해운대우체국 방향 1차로에서 신호 대기 중인 차량을 들이받았다. 이 충격으로 튕겨져 나가면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보행자들과 네거리를 통과하던 차들을 다시 잇따라 치였다. 이 사고로 3명이 숨지고 21명이 다쳤다.


◇뺑소니? 의식 상실? 사고 경위 의문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해운대경찰서는 지난 3일 푸조 차량 운전자 김씨의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경찰은 김씨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치상)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사상) 혐의를 적용했다. 도주치상은 뺑소니 혐의다. 경찰은 1차 차량 접촉 사고 사고 때 김씨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운전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네거리 사고도 이 같은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일으킨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김씨가 발작 등의 증상으로 의식을 잃었다면 푸조 차량이 다른 차량을 들이받거나 인도로 돌진하는 등 사실상 통제 불능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영상 속에서 김씨가 능숙하게 차로를 변경해 과속으로 버스 앞을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가는 점 등으로 미뤄 “의식을 잃었다”는 김씨 진술의 신빙성에 의문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김씨가 인적이 드물거나 심야에 뺑소니를 친 것도 아니고 유동인구와 차량 통행이 잦은 한낮의 해운대 도심에서 뺑소니를 치고 달아났다는 부분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또 김씨가 이날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고 소변검사에서 마약 성분도 검출되지 않았다. 차량 보험도 들어있고 고가의 외제차를 모는 등 경제적 여유가 있는 김씨에게서 뺑소니 동기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성수 해운대경찰서장은 “김씨가 의식이 완전히 없었거나 온전한 정신이었다고는 보기 힘들다. 1차 뺑소니 사고부터 네거리 사고까지 분석하면 김씨가 점점 의식을 잃어가는 과정으로 보인다”며 “일부 의식이 남아있더라도 사물을 분별할 수 있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몽롱한 의식 상태에서 차량을 계속 몰다가 사고가 났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경찰 조사 내내 “의식을 잃었다. 의식을 회복해보니 병원이었다. 왜 사고가 났는지 모르겠다”고 진술하고 있다.

부산대병원 이가현 신경과 교수는 “뇌전증도 여러 증상이 있다. 이 때문에 뇌전증으로 인한 발작 증세가 짧게는 즉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어떨 때는 어지럼증, 구토 등 수초에서 수분에 걸쳐 전조 증상이 나온 뒤 발작이 진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번 사고가 전형적인 사고 관점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김씨 질병과의 연관 관계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거짓말탐지기도 동원하려고 했으나 김씨가 사고 후 약물치료를 병행하고 있어 정확한 결과를 얻기 어렵다고 보고 미뤘다.

이에 따라 경찰은 도로교통공단에 사고 분석을 의뢰하고 필요하면 의사협회에도 소견을 구할 계획이다. 경찰은 지난 7월 운전면허 갱신 과정에서 뇌전증을 숨긴 사실을 확인하고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를 추가하는 한편 조사를 통해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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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를 두고 의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의 모 병원 의사 김모씨는 “뉴스와 방송을 통해 사고 영상을 접한 신경과 의사들도 해운대사고 원인이 뇌전증에 따른 발작이냐 아니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면서 “뇌전증도 여러 종류여서 운전자의 정확한 병명 등을 알아야 구체적인 진단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강승우 기자 kang.seu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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