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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이 빚은 찰흙 작품으로 음향 듣는 퍼포먼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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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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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서구 화단에 단단한 발판을 마련한 김수자(59·사진)씨가 모처럼 한국전을 마련했다. 지난 달 27일 서울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막한 ‘김수자-마음의 기하학(Archive of Mind)’이다.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중진 작가 연례 프로젝트의 세 번째 순서로 설치비용이 많이 드는 대작을 시도했다.

김수자 국립현대미술관서 설치 실험
“몸의 흔적으로 만든 신개념 회화”

김 작가는 ‘보따리’ 연작에 이어 ‘바늘 여인’ ‘거지 여인’ ‘거울 여인’ 시리즈로 여러 비엔날레 초대와 세계 주요 도시에서 개인전이 이어지는 인기작가다. 장소성·정신성·정체성을 특징으로 한 그의 작품은 전시장 벽에 갇혀 있기 보다는 현장에서 사람들과 만나는 걸 핵심으로 한다. 그는 최근 들어 전 지구적 이슈가 되고 있는 이민·망명·폭력과 같은 따끈따끈한 쟁점을 다루며 미술의 영역을 확대하는 다층적인 실험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국내전은 ‘김수자의 오늘’을 보여주는 미공개작 9점으로 이뤄졌다. 대표작이라 할 ‘마음의 기하학’은 관객 참여 퍼포먼스와 설치물이다. 19m에 달하는 대형 원탁에 둘러앉은 관람객은 찰흙 덩어리를 둥그렇게 빚으며 음향을 듣고 자신이 굴리는 물체와 관계맺음의 태도를 살핀다. 작가는 “마음의 모서리를 깎으며 오래된 흔적, 빈 곳을 찾아가는 손의 움직임에 집중해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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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역적 오브제’. 요가 동작이자 ‘비움’의 상징이다.

‘몸의 기하학’은 김씨가 지난 10년 동안 자신의 온 몸을 던졌던 요가용 깔개를 벽에 붙여놓았다. 손과 발이 닿은 흔적, 땀과 눈물로 적셔진 물질의 변화가 드러내는 일종의 ‘바디 페인팅(body painting)’이다. 작가는 “기성품 오브제(ready made)가 아니라 몸의 흔적으로 나타나는 ‘사용된 오브제(used object)’라는 새로운 개념의 회화”라고 설명했다.

김수자씨가 평생 집중해온 수직과 수평의 문제를 다룬 ‘몸의 연구’는 작가의 퍼포먼스 사진에 의한 실크스크린 연작이다. 들숨과 날숨이 만들어낸 파동을 기록한 디지털 자수인 ‘숨’도 흥미롭다. 석고로 본뜬 작가의 양 팔이 나무 탁자 위에 놓인 ‘연역적 오브제’는 요가 동작을 떠올리게 한다. 양 손의 엄지와 검지를 붙인 이 조각은 손이 곧 바늘이라는 작가의 믿음을 보여주면서 ‘비움’의 정신을 드러낸다.

2010년부터 인디언 보호구역, 뉴멕시코 등지를 무대로 찍고 있는 기록 영화 ‘실의 궤적’에 이르면 작가는 감독으로 변신한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직물을 짜고, 감싸고, 풀어내는 행위에 대한 인류학적 탐구”라는 그의 해석은 보따리에서 지구로 부풀어오른 작가의 스케일을 가늠하게 한다. 전시는 2017년 2월 5일까지. 02-3701-9500.

글·사진=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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