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核해법] 침묵하는 美 … 묘수 제시할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미국이 북한 핵문제의 해법을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우려했던 사태가 한꺼번에 터져나오고 있지만 대책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우선 북한은 지난 8일 뉴욕 채널을 통해 사용후 핵연료봉 8천개의 재처리를 완료했다고 미국에 통보했다. 사실이라면 북한은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암묵적으로 설정했던 금지선(red line)을 넘어버린 셈이다.

게다가 뉴욕 타임스는 20일 북한이 영변 핵시설 외에 별도의 산악지대에 제2의 핵시설을 건설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그동안 "독재자 김정일과는 대화가 소용없다"면서 사실상 시간끌기 작전을 펴왔다. 하지만 이제 강공이든, 대화든, 아니면 더 강력한 봉쇄든 간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engagement)이 불가피하게 된 상황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백악관과 국무부.국방부의 고위 관계자들은 지난 17일 긴급 고위급 회동(principal meeting)을 가졌다. 북핵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또 하루 뒤인 18일에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직접 만났던 중국 다이빙궈(戴秉國)외교부 부부장이 워싱턴을 방문해 콜린 파월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잇따라 만났다. 그러나 어떤 논의가 오고갔는지는 아직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미국의 침묵과 관련,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북한에 대한 대응방식을 놓고 광범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 내의 강경파와 온건파가 서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물론 북핵 사태가 이렇게까지 오게 된데 대해서도 책임소재를 따질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뉴욕 타임스의 '제2 핵시설'보도도 미국의 대북 군사공격을 막기 위해 워싱턴 온건파들이 의도적으로 흘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북한이 산악지대에 핵시설을 건설했을 경우 영변에 대한 미국의 공습은 사실상 무의미해진다. 전면전을 벌이지 않는 한, 공습으로는 북한의 핵시설을 모두 없애기 어렵게 된 것이다.

또 이라크 사태의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으로선 북한 등 다른 지역에서 모험을 할 여력도 없는 형편이다. 미국이 침묵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다이빙궈 부부장을 통해 전달된 북한 측 입장에 미국으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꼬리표'가 붙어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미국이 장고(長考) 끝에 내리게 될 선택이 무엇일까. 과거보다 더 적극적인 자세로 대화에 임할 것인가, 아니면 대북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평양을 경제적으로 압박하는 북한 고사(枯死)작전을 선택할 것인가. 전문가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