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대선자금 기자회견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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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선자금에 관한 사회적 공방을 지켜보면서 안타깝고 착잡한 심경을 금할 수 없다.

역대 어느 선거보다 깨끗하게 치러졌다고 자부해 온 지난 대선 과정이 새삼스럽게 국민들로부터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여러 차례, 정치 개혁에 대한 소신과 의지를 밝혀왔다.

지난 4월 국회연설에서도 우리의 현실을 국민들에게 솔직히 말씀드리고 제도를 바꿔 나가자고 호소한 바 있다.

그런 와중에 민주당의 책임있는 인사가 대선자금에 대해 한마디 실언을 한 것을빌미로 야당은 정치공세를 펼치고 있다.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지난 대선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 이룩한 소중한 성과마저 부인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다.

대선자금 문제가 국민적 의혹으로 제기된 이상 여야모두 투명하게 밝히고 가야 한다.

공개 범위는 대선자금 전모를 밝히는 것이어야 한다.

선관위에 신고된 법정선거자금만이 아니라 각 당의 대선 후보가 공식 확정된 시점 이후, 사실상 대선에 쓰여진 정치자금과 정당의 활동자금 모두를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대선 잔여금이 얼마이며 그것을 어떻게 처리했는지까지 밝혀져야 한다.

지출뿐만 아니라 수입금 내역도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공개했을 때 경제계가 정치자금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국제신인도에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재계가 자발적으로 공개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도 여의치 않을 경우, 수사는 하되 자금을 제공한 기업이나 기업인은 철저히 비공개로 하는 것도 방법이다.

공개 만으로만 그쳐서도 안된다.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절차를 통해 철저하게 검증을 받아야 한다.

여야가 합의한다면 특별검사라도 좋고 검찰도 좋다.

다만 수사권이 있는 기관에서 조사해야 한다.

대선 자금 공개는 여야가 함께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개한 쪽만 매도되고 정치개혁에 아무런 실효를 거둘 수 없다.

정치개혁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낡은 정치의 악순환을끊고 정치개혁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고자 하는 저의 충정에 정치권의 용기있는 결단과 국민 여러분의 협력이 있으시기를 바란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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